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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공간에서 평안할 수 있을까?


삶을 파괴하는 문제, 폭력

인간의 성장은 전 생애에 걸쳐 이루어진다. 특히 ‘안전함’, ‘사랑’, ‘안정적 직업’, ‘친밀한 관계’ 등의 요소들로 인해 삶이 성숙할 수 있다면 누구나 언제든지 좋은 삶으로 변화 가능하다는 사실도 생애서사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다. (조지 베일런트, 2013) 


그러나 전 생애에 걸친 성장을 파괴하고 좋은 삶의 기회를 박탈하는 위험요소들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폭력’ 이다. 특히 작고 큰 폭력이 난무한 우리나라는 폭력에 대해 우호적이거나 허용적인 태도가 높아 오랫동안 인권침해 문제로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스포츠계의 지속적인 폭행과 가혹행위, 여성 성폭력 및 강남역 살인 사건,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사건, 학교 폭력으로 인한 자살행위 등 그동안 묵인하고 방조해왔던 문제들이 사회적 이슈로 공론화되는 추세이다. 


폭력은 그 유형을 떠나 한 사람의 생애에 걸쳐 대상 없는 공포를 만들어내며 삶을 파괴한다. 즉 독립된 인격체로서 온전히 살아가는데 육체적, 심리적, 정신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되어 다른 삶으로 이동하는 것을 봉쇄한다. 그리고 폭력이 일어난 물리적인 공간에서 탈출을 시도하면 곧장 거리로 내몰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폭력은 빈곤, 배제, 고립, 반사회적 행동 등과 같이 사회 구조적 요인과 결합한 사회문제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본 연구를 통해 참여자의 대부분이 가정, 학교, 학원, 복지시설 등 다양한 공간에서 복합적인 형태의 폭력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실이 드러났다. 폭력 피해 경험자는 연령과는 상관없이 모두 폭력의 울타리에 갇힌 채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었다. 


특히 최근 연구(김정혜 외, 2019)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폭력 피해 경험은 남성에 비해 여성에게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또한 폭력은 불안정한 주거, 빈곤, 트라우마와 같은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으며, 무엇보다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채 홀로 고립되어 살아가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로써 폭력은 온전한 자립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고위험 요인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시설은 편의와 보호라는 명목 하에 사회에서 정한 정상성 기준에 미달하는 사람들을 분리해 인권을 존중받지 못한 채 살게 하는 공간이다. 주로 장애인과 노인, 그리고 돌봐줄 어른이 없는 아이들 중심으로 시설에 보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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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장애인 시설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면, 2019년 기준 장애인 거주시설은 1,557개소이며 총 29,662명이 입주해 있다. (보건복지통계연보, 2020) 거주 인원은 아주 미미하게 감소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시설 수는 계속해서 증가 추세이다.

이렇게 많은 공간에서 아직도 거주자에 대한 폭력, 억압, 착취, 가혹행위 등 인권 침해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폭력 피해 경험 장애인의 32.8%(310건)는 거주지에서 폭력을 경험하였고, 31.2%(295건)는 시설에서 경험하였다. 그리고 폭력 가해자는 거주 및 이용 시설 종사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장애 정도가 심할수록(중증장애인) 피해 경험(96.4%)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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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에서 벗어나 현재 지원주택에 살고 있는 연구참여자 이용찬 님은 무허가 장애인 시설에 거주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사람을 길들이기 위해 폭력을 무자비하게 사용한 곳”, “그 옛날 미국의 노예처럼 취급받으며 인권이 유린당한 곳”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시설에 있는 직원들한테 이유도 없이 맞고. 그리고 신경안정제 두세 개 먹이고 그리고는 재워요. 잠자는 친구를 숙직 직원들이 깨워서는 직원실 앞에다가 무릎 꿇려 놓고 때려요. 길들이는 거예요, 개처럼. 또, 저녁을 먹고 한 시간 정도 지나면 남자 간호사들이 약을 줘요. 힘을 못 쓰게. 무허가 시설이었던 그 곳에서는 먹는 밥에 수면제를 섞어서 줬어요. 아침, 점심, 저녁을 다 수면제를 섞은 밥을 주고. 그리고 반찬도 그 왜 김치를 오래 두면 구더기가 생기는 그걸 먹으라고 주고. 그리고 저녁을 먹고 나면 바께스(양동이)를 방에 사람 자는 머리 위 구석진 데다가 놓고, 거기서 볼일을 보라고. 밖에서 방문을 원장 부부가 자물쇠로 잠가요. 그리고 아침 되면 문을 열어주고, 바께스 들고 화장실로 가서 그걸 비우고. 수돗가에서 그 바께스를 놋그릇처럼 반짝이게끔 닦아야 했고, 안 닦으면 방 잘 때 냄새가 바께스에서 나서는 잠을 못 자요. 못 잘 정도로 바께스에서 냄새가 나고 그랬었고. 여자도 정신이 조금 모자란 여자를 원장이 때려가면서 일 시켜먹고. 저녁이랑 새벽에 우사로 불려가서는 우유를 짜서 그걸 대기업 회사에다가 그걸 팔아먹고 어찌 보면 그 우유가 사람 피를 짜서는 그걸 사람들한테 팔아먹는 거고.”

— 이용찬 님

사회복지법인프리웰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는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집단 수용 생활을 하는 시설 자체가 폭력의 위험성이 늘 존재하는 것이므로 “좋은 시설은 없다”고 단언하며, 시설 폐쇄를 통한 사회 구조가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폭력과 인권유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김정하,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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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차별과 혐오를 극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현상 중 하나는 수천 년을 걸쳐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젠더기반폭력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젠더기반폭력은 1993년 UN총회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 철폐 선언'과 동시에 사용되었으며, 상대 성에 대한 혐오를 가지고 저지르는 신체·정신·성적 폭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폭력과 연관이 있으나, 최근에는 힘의 논리를 넘어 성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까지 포함하며 성 고정관념의 확장으로 기인된 문제로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20).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으로 ‘여성 혐오’ 문제가 불거졌고, 이후 2018년 시작된 미투운동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시선이 담긴 사회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 계기가 되었다. 젠더기반폭력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은 언젠가는 자신도 그 참혹한 현장을 겪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한 채 평생 안전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를 통해 드러났다.

여성 인권이 보장되고, 여성이 동등한 동료 시민으로 존중받는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젠더기반 폭력의 현 주소를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한국사회의 젠더기반폭력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정폭력에 국한하여 젠더기반폭력 문제를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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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기준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여성폭력 상담건수가 29,509건으로 집계된 가운데 가정폭력이 14,775건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성폭력(9,248건), 데이트폭력(592건)순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여성 피해 상담이 97.6%로 나타났으며, 남성이 가해자인 경우는 전체 상담 건수의 92.4%를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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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피해자 중

그리고 젠더기반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장소는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강제적으로 묶여있는 ‘집’으로 나타났다. 가정폭력 피해 경험 여성의 25.0%는 (전)배우자에게, 15.4%는 친족에게, 17.6% 애인·데이트 상대자, 12.2%는 직장 관계자에게 폭행을 당한 것으로 나타나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문제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정혜 외, 2019) 유사하게 여성 장애인 학대 피해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장소 역시 피해자 거주지(35.0%)였으며, 그다음으로 거주시설(21.9%), 직장 및 일터(12.3%)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학대의 가해자로 부모(12.9%)와 배우자(5.8%)등 동거인을 포함하여 친인척이 33.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2018 장애인 학대 보고서, 2018; 시설사회, 2020)

즉 안전을 보장받아야 하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여성은 안전함을 보장받지 못한 채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헌법 제10조에 명시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보장’에서 여성이 배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집에 전화선을 다 칼로 자르고... 우리 집 책상에, 문에 다 칼자국이에요. 칼을 베개 밑에 두고 점점 심해지니까 무서웠어요. 베개 밑에 칼을 두고 자더라고요”

— 안순화 님

“옛날 어렸을 때 살던 집은 새도 있고 바람도 불고 정겨웠는데, 지금 집은 남편에 대한 생각 때문인지 두렵고, 삭막하고, 무섭고, 외롭고 그런 느낌이라네요.”

— 김수목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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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적 사고 기반의 젠더차별적 사회 구조*의 문제는 집에서도 드러났다. 남편이 아내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가부장주의에 의한 고정적 성 역할과 우월한 힘으로 약한 자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을 당연하게 인식하는 문화 등이 그 문제인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 이분법적 젠더 체계에선 태어날 때 여성이란 성별을 지정받은 사람을 여성성과 여자다움에 자동적으로 연결시키고, 태어날 때 남성이란 성별을 지정받은 사람은 남성성과 남자다움에 자동적으로 연결시킨다.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적 구분조차 사회적으로 구성된 산물이라는 것이 점점 더 드러나고 있다. (일라이 클레어, 2015)


“남편이 폭행할 때. 이렇게 목을 심하게 눌렀대요. 그래서 목이 좀 좋지 않다고. 폭행이 가끔 진짜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폭행하는데, 그때 그 정도로 폭행을 당했대요. 2~3년 전에. 그래서 목 수술 한 번 했는데 그 이후로는 자유롭게 거동하기가 어렵대요.”

— 김수목 님

“아직도 기억나는 게 아빠가 쇠 우산으로 엄마를 때리는데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식으로 맞고 있었어요. 그게 진짜 충격이었어요. 아빠보다 엄마가 더 무서워 보였어요. 소리를 지르거나 피해야 하는데 피하지를 않는 거예요.”

— 정세순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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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가정폭력을 목격한 자녀의 경우도 당사자 만큼이나 고통과 불안이 내재화 되어있다. 주목할 점은 가정폭력을 목격하며 자란 연구참여자 모두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것이다. 직접적인 영향 여부를 떠나, 이러한 공통점은 청소년기에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폭력이 성인이 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친구들 보면 되게 화목한 것 같고 나만 불행하고. 우리 엄마 아빠는 왜 이렇게 싸우나. 아빠가 엄마만 유독 폭행했어요. 집 자체가 공포스러웠죠. 그래서 어렸을 때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 정세순 님

“예전에 엄마가 쓰신 가계부를 제가 봤거든요. 가계부에 아빠가 막 폭력을 행사한 그런 흔적들이 있는 걸 엄마가 쓰셨거든요. 어디를 어떻게 때렸다 라고. 오늘은 어떻게 했다, 일기 형식으로 쓰셨거든요. 저는 그걸 보면서 정말 충격도 받고, 처음에 보고 정말 많이 울었어요.”

— 박정문 님

“수목 님은 지금의 남편도 그렇지만 아빠도 화가 나면 엄마를 때렸대요. 애를 간수를 못 해서 청력을 잃게 했다고요. 그리고 평소에도 아버님이 엄마를 가끔 이렇게 때리는 것을 봤대요. (...) 어머니를 오랫동안 상습적으로 폭행했대요.”

— 김수목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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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를 통해 확인된 또 하나의 사실은 부모의 폭력을 경험한 자녀는 폭력을 그대로 답습하여 행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남성 형제에게서 주로 나타났다.

정세순 님은 어려서부터 지속적으로 오빠에게 폭행을 당해왔고, 그로 인해 청력에 문제까지 생겼다. 남성 형제의 폭력 문제를 통해 폭력이 가정 내에서부터 세대 간 전이 되는 구조로 계속해서 순환되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제가 아빠한테 맞지는 않았지만, 오빠에게 강하게 맞았어요. (엄마 폭행을 일삼던) 아빠조차 그만 때리라고 얘기를 할 정도였어요. 겁을 많이 줘요. 칼로 위협을 한다던가 이런 게 좀 많았어요. (...) 성인이 되어서도 오빠에게 폭행을 지속적으로 당했어요. 한번은 너무 심하게 맞아서 지금 한 쪽 귀가 잘 안 들려요.”

— 정세순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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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이후 신체적/정신적 가정폭력 신고율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가정 내 남성이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더욱 심화되었다. 유럽은 신체적, 정신적 가정폭력 신고율이 약 30.0% 이상, 아시아는 약 25.0% 이상 증가했다. 국내에서도 코로나19 이후 가정폭력 문제가 계속해서 거론되고는 있지만 실제 접수된 사례는 미미하여 코로나19로 인해 가정폭력이 증가하였다는 정확한 결과는 아직 없는 상태이다.

이 결과를 두고 일선에서는 그동안 가정폭력을 가정 내에서 해결해야 하는 사적인 문제로 취급하였기 때문에 사회적 지원 체계가 원활히 작동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결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갇혀 사회에 또 다른 낙인이 찍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제기하였다. (김명숙, 2011)

실제로 최근 연구에 따르면 배우자에 의한 폭력 피해 경험 후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단 1.0%에 불과했으며, 도움 요청 시 공적 지원 체계보다는 사적 관계에 손을 내미는 경우가 더 높게 나타났다. 그리고 공적 지원 체계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자녀를 생각해서', ‘신고해도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 ‘경찰이 도와줄 수가 없을 것 같아서'와 같은 무력화된 반응이 내포되어있는 응답이 주요하게 거론되기도 하였다. (김정혜 외, 2019)


🔇

본 연구의 가정폭력 피해자 또한, 경찰에 지원을 요청하기도 하였으나 가정 내 발생하는 사소한 문제로 취급되며 사안이 무마되거나 보호 조치를 받은 경험이 없어, 이후 폭력이 발생하더라도 누군가에게 도움 요청을 시도하지 않는 경향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아빠가 한 번 왔다가 가면... 자기 분에 못 이겨 화를 내다가 제어가 안 되니까 막 집 물건을 부수고 가는 경우도 있고. 그러니까 이제 그게 너무 저희는 무섭고 힘들었어요. 도와줄 사람도 없고.”

— 박정문 님

“저를 엄마가 아빠한테 보낸 7살 즈음 아빠가 이제 술을 마시고 좀 폭력적으로 많이 변했다고 언니가 그랬죠. 아빠는 술 먹고 이제 저를 때리시고, 아빠한테 맞았을 때 제가 살려달라고 그렇게 소리를 쳐도 할머니는 방문을 잠그고 모르는 척 방관하셨고요. 도와주는 이웃도 없었어요.”

— 아리 님

“친구가 신고를 했어요. 사실은. 저 맞는 거 보고. 근데 아빠도 오시고 경찰서에. 근데 가족끼리 그런 거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는 그런 게 잘 안 되어 있었나 봐요. 가정폭력이나 이런 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저희 아빠가 그냥 동생이 잘못해서 때린 건데 무슨 그런 거냐 하면서 그냥 무마되는...”

— 정세순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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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장애인에 대한 폭력의 문제는 가시화되지 않고 고립된 채 피해자의 몫으로 남겨져, 폭력 피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정 내에서 남녀관계에서 성폭력이 일어나거나 괴롭힘을 당할 때 사회가 올바르게 해주면 좋겠다고 해요. 왜냐하면 수어를 잘 모르니깐 한쪽이 아니라고 발뺌하면 끝난대요. 경찰 조사 들어가더라도 남자들이 거짓말하고 빠져나가면 해결되지 않은 채. 특히 청각장애인이 잘 안들리니까 대강대강 수화통역인의 얘기만 듣고 빨리 마무리하려 하면 기분이 안 좋고. 비장애인 같으면 철저히 조사하고 캐묻고 그러는데 대부분 수어통역사한테 물어보고 듣고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문제들을 해결했으면 좋겠대요. 특히 농인 사이에 성폭력 사건들도 종종 생기는데 농인들 성폭력 문제는 묻혀버리고 이슈화가 안 된대요. 청각장애인 남자들이 바람을 많이 피워서 여성을 괴롭게 하는 문제들, 비장애인 사회에서는 그럴 수 없지 않을까요? 지금도 젊은 세대들은. 돈 뜯어서 갈취하고, 여자들 함부로 다루고, 폭력 휘두르고 그런대요. 이런 문제가 빨리 해결되면 좋겠다고 말하네요.”

— 김수목 님


  •  인권 기반의 성인지 감수성 강화 교육 
  •  젠더와 폭력을 구분한 관리 체제에서 통합적 관리 체제로 전환 
  •  예방 및 조기 개입(Early Intervention) 시스템을 구축⋅강화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젠더기반 가정폭력은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경험한 사람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는 반인권적 문제다. 나아가 가정폭력은 세대 간 전이가 되어 악순환을 끊어내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더욱 문제다.

따라서 젠더기반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하며, 인권 기반의 성인지 감수성 강화 교육은 물론 젠더와 폭력을 구분한 관리 체제에서 통합적 관리 체제로 전환하여 예방 및 조기 개입(Early Intervention) 시스템을 구축⋅강화해 나가야 한다.


알코올(음주) 의존은 폭력의 심각성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특히 가정폭력을 심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스웨덴의 한 연구에서는 알코올 의존 남성이 가정폭력을 일으킬 확률이 알코올 비의존 남성보다 6~7배 높은 사실을 밝히기도 하였다. (BBC, 2019) 
이는 남성권력중심 사회 구조에서 친밀한 관계 속에서 약자를 통제하는 방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가정폭력 문제와 음주 문제가 상호작용하며 더욱 심각한 피해를 일으키는 중첩된 문제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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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 님은 아버지의 음주로 무분별한 폭력을 경험하여 초등학교 4학년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집에 들어가기 싫었던 이유는 집에 가면 아버지가 술만 먹으면 계속 폭력을 했던 거죠. 너무 어렸을 때부터 많이 맞아서, 초등학교 4학년 때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는데, 그때 물에 얼굴 박고 숨 쉬지 말아야겠다 했던 기억이 나요. 그냥 이 집에서 살다가는 내가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아예 안 들어갔죠. 그리고, 아빠랑 저랑 같이 같은 방을 쓰는데 아빠가 새벽에 술을 마시고 들어왔을 때 제가 자고 있으면 깨워서는 항상 안마하라고 시켜요. 근데 만약 제가 너무 졸려서 못하면, 그때부터 새벽에 엄청 맞거나 그랬어요. 그래서 항상 너무 졸렸어요, 학교 갈 때.”

—아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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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순화 님은 음주로 돌변하는 남편의 행동이 극단적으로 치닫자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살기 위해 집 밖으로 탈출하며 이혼을 결심했다.


“술주정이 심했어요. 술만 안 마시면 그렇게 천사 같은 사람이 없는데, 술만 마시면 사람이 변하더라고요. 그리고 술 마시고 나면 이 타령, 저 타령 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밖에서 무슨 좋은 일 있었냐고, 왜 이렇게 기분이 좋냐고, 본인은 속상한 거예요, 그 모습 보는 게. 그래서 나가서 술 사와 마시고. 그리고 저를 붙들고 새벽까지 이야기하는 거 다 들어줘야 하고. 칼 위협을 넘어 나중에는 휘발유를 가지고 와서는 라이터를 옆에 두더라고요. 너무 무서워서 도저히 같이 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혼했어요.”

—안순화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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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랑 님은 과거 동거인이 사업 실패 후 술에 의존하던 시절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폭행을 경험하였고 그 상황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다.


“10년 동거를 했는데 그 사람이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어요. 10년 후에 사업이 망하고, 사람이 변하기 시작한 거예요. 술을 먹으면은 절 못살게 굴고. 폭행도 하고. 안 그랬던 사람이에요. 그때 진짜 막 죽으려고 손목도 두 번 긋고, 약도 먹고... 그래서 그 사람하고 어디 가서 술을 많이 먹었는데 제가 유리창을 깨서 손목을 그은 거예요, 괴로워서. 진짜 그 사람하고 마지막이다, 끝내자 할 때는 테이프로 내 손하고 발까지 다 묶더라고요.”

—이혜랑 님



이후 홀로 자립하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이웃에 살던 알코올 의존증 남성에게 또 한 번 이유 없는 폭행을 당하여 그 거주 공간에서 다시 탈출을 시도해야만 했다.


“좀 오래된 주택이었는데, 앞집에 살던 남자애가 또 알코올 중독이라서... 걔 때문에 살 떨려서 살 수가 없었어요. 폭행을 당했었거든요, 그 남자한테”

—이혜랑 님


위의 사례들에서 언급된 ‘칼’, ‘휘발유’, ‘손 묶음’, ‘성폭행’과 같은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음주로 인한 폭력은 그 수위와 강도가 매우 심각하다. 이러한 수준의 폭력을 경험한 피해자는 자해나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가 높기에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다뤄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음주와 폭력의 중첩적 문제를 구조적으로 파악하고 예방책을 제시하는 연구가 미비함에 따라 관련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체벌은 권위주의적 통제가 필요한 사회에서 긍정적인 수단으로 인식되며, 특히 어른이 아이의 행동 개선의 목적으로 빈번하게 사용되어왔다.

🤦🏻

체벌이 법적으로 금지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함

갓난아이 시절부터 시설에서 자란 유진화 님은 훈육을 목적으로 시설 선생님으로부터 체벌을 지속적으로 경험했다고 한다.

“원장님이 공부하라고 그랬고. 원장님이 벌도 세우고 그랬어요. 손바닥도 맞고. 밥도 안 먹고 그래서 밥도 안 주고 굶기고. 외출 금지도 시키고 그랬어요.”

—유진화 님



박정문 님은 보습학원 다닐 때, ‘사랑’과 ‘보호’로 위장한 체벌을 경험하였다. 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어머니에게 호소하였으나, 학교 성적에 도움 되는 행위로 취급하며 묵인하였다고 한다.

“중학교 때 학원에서 제가 맞으면서 공부를 했어 가지고. 시험을 보고 틀리면 남자 선생님이 철로 된 자를 가지고 학원에서 많이 때렸어요. 애들 보는 앞에서 때렸거든요. 저는 그게 너무 속상했어요. (선생님은) 계속 세뇌시켰어요, 이게 너희를 위한 길이라면서. 이렇게 해야 성적이 오른다나 뭐라나 막 그러면서.”

—박정문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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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훈육을 위해 체벌이 필요하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체벌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부모 또는 선생님이 아이를 체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는 일반적으로 학대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지며 체벌보다 수위가 높은 학대 또는 폭력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김희경, 2019)


한만석 님은 어릴 적 들어간 직장에서 서열 관계 정립 명목으로 이유 없는 폭력을 매일같이 경험했다. 하지만 모두가 겪는 의례적인 일이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겨내야 한다는 각오로 오래도록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채 홀로 감내했다고 한다.

“4층은 저기 주인집이고 5층은 공장, 6층은 기숙사였죠. 여자 기숙사, 남자 기숙사. 옛날에는 기숙사가 많았고, 거기서 한 6개월 정도 지냈어요. 아, 근데 박달나무로 너무 때리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빵집에서는 이렇게 세력 싸움이 좀 심했어요. 그것 때문에 매도 맞아봐야 된다 그래가지고. 그냥 의미 없이 맞은 것 같았어요. 의미 없이. 맞다가 너무 큰형한테 도저히 못 맞겠다 그러고.”

— 한만석 님

2021년 1월, 민법에 표기되어있는 ‘아동 체벌권' 조항이 63년 만에 삭제되었으나 체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갑론을박 중이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모의 66.7% 및 아동의 80.0%는 체벌이 법적으로 금지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며, 인지하더라도 부모의 60.7%는 여전히 훈육을 위해서는 체벌이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YTN News, 2021) 이는 인권감수성 향상을 위한 민주 시민 교육 및 예방⋅관리 시스템 전환 없이는 법 개정만으로 체벌 금지가 뿌리내려지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2021년 보건복지부 데이터에 따르면 아동학대는 2009년 대비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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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아동학대 유형 중 중복 학대 사례 증가 추이가 두드러지는 가운데 ‘정신적 학대’와 ‘방임’에 대한 증가 추세도 주목할 만하다. 아동학대의 79.5%는 가정 내에서 발생하였고, 이 중 77.5%는 아동의 부모로부터 발생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보건복지부, 2019) 이는 가정 내 발생하는 아동 폭력 피해에 대한 적절한 보호 체계 부재가 낳은 결과로 추정해볼 수 있다.


보건복지부 아동학대 주요통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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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 님은 일찍부터 부모의 학대와 함께 방임 폭력에 노출된 중복 학대 피해자이다. 가족 구성원 그 어느 누구도 아버지의 가학적인 폭행에서 구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돌봄을 제대로 제공해주지도 않았다. 한 예로 아리 님은 어려서 청결의 중요성에 대해 알려주는 어른이 전혀 없어 청결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학우들에게 정서적 폭행인 집단 따돌림까지 당한 경험이 있다.


“초등학교 때 왕따를 당했었다고 했잖아요. 그 이유가 뭐였냐면요. 머리에 이가 생겨 가지고 왕따를 당했어요. 제가 집의 무관심 속에서 살아왔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씻는 방법을 몰랐던 거에요. 사실 씻어야 하는 것인지 생각도 못 했고. 머리를 그냥 일주일에 한 번 감고 그랬는데, 결국 이가 생겼고, 학교에서 친구가 머리에 이 있는 것을 보고 그다음부터 일 년인가, 한 학년 동안 왕따 당했죠. 그런데 그 사건 이후에 씻어야 되는구나를 알게 되긴 했어요. 그리고, 사실 되게 안 씻고 다녔지만 물어보는 선생님이 아무도 없었어요.”

—아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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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순 님은 유년기를 떠올리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가하던 무차별적 폭력 외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맨날 아빠가 술을 드셨기 때문에 그걸로 인해서 항상 엄마랑 싸우고 저는 옆에서 항상 울고 있는 모습 이런 것밖에 기억이 안 나요.”

—정세순 님


이는 아동기에 겪은 환경이 성인의 삶에 오래도록 흔적을 남긴다는 연구 결과를 고려해볼 때, 어린 시절에 경험한 참혹한 장면의 잔해는 경제적, 정서적, 사회적 모든 측면에서 어려움을 준다. 이는 자립 또는 좋은 삶을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조지 베일런트, 2013; 정희진, 2016)

최근 학교 및 또래 집단폭력 문제는 연예인 및 스포츠 선수들을 중심으로 이슈 몰이가 한창이며, 이로 인해 사회적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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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학교폭력 실태조사 (2020)

2020년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학교폭력 비율은 2019년 대비 0.7% 감소하였으나, 2만 7천여 명 정도는 여전히 학교 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유형별로는 언어폭력이 33.6%로 가장 높게 나왔고, 그다음으로는 집단따돌림(26.0%), 사이버폭력(12.3%) 순으로 나타났다. (교육부,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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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정체성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에 경험하는 학교 및 지역사회 폭력은 그 수위에 상관없이 자아 존중감을 저하시키며 사회 관계 형성에 미숙함을 초래한다. 심리적으로는 불안, 초조, 긴장과 같은 감정이 뒤섞여 우울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고, 심각할 경우 자살을 시도하는 등 삶을 파괴로 몰아가기도 한다. (박재은, 2016)

“초등학교 5~6학년 때 계속해서 괴롭힘을 당했어요.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인데 SNS로 이유 없이 무차별적으로 욕을 막 해요. 그 전에는 그렇게 욕을 당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그걸 그대로 받으니까 너무 상처가 컸고, 학교에서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있는데도 대놓고 욕을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누가 이렇게 저 보고 수군거리면 되게 무서워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되게 무서워하는데, 그때는 정말 무서워했던 것 같아요. 그랬던 거 같아요.”

— 박정문 님


청각 장애인 김수목 님은 어려서부터 동네 친구 및 이웃들로부터 혐오 발언을 경험하였다. 이후 정상-비정상 사회 구조에서 자신의 위치성을 비정상 그룹으로 분류하고 고립된 삶을 살아왔다.

“방학에도 집에 안 갔대요. 집에 가면 동네 애들이 못 듣는다고 놀리는 게 싫었대요. 벙어리다, 뭐 못 듣는다, 서로 싸우기도 하고. 그래서 중학교 때까지 집에 가본 적 없이 학교에만 있었대요. 방학 동안에는 기숙사에 홀로 남아있었고.”

— 김수목 님


현재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유제식 님 또한 어려서 집단 따돌림 경험 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없이 홀로 지내는 삶을 선택하였고, 이는 직장 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제가 어렸을 때 은둔형 외톨이 같은 성격이었어요. 친구들이 없어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어요. 친구들 무리에서 잘 어울리지 못했는데, 생각해보니 요즘 얘기하는 식으로 왕따를 당한 것이었죠. 그러다 보니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계속 갔죠. 제가 마음에 안 드는지 사람들이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이 바로 느껴지는데, 그게 굉장히 힘들더라고요. 사람 대하는 게 힘들어요. 저도 싫어하는 사람하고 잘 지내지 못하겠더라고요. 1분 1초 얼굴 보는 것도 싫은 느낌이었는데, 10년 근무하는 동안 상사들 하고도 마찰도 있었고, 스트레스도 받고, 또 밑의 친구들이 치고 올라오고, 위에서는 찍어 누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꾹꾹 눌러 참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제가 튕겨 나온 거죠.”

— 유제식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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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UN은 “아동이 살기 좋은 세상(World fit for Children)"을 선언하며 아동의 권리 실현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아동폭력 근절을 위해 19년 동안 사회가 노력해 온 부분은 정상성 프레임을 씌워 방임과 폭력이 난무한, 내 몸과 정신을 해치고 있는 그 장소로 다시 돌려보내 회복을 강요한 것 뿐이었다. 그 결과 2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는 아동학대 및 학교폭력이 서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2020년 '정인이 사건'으로 일어난 사회적 공분을 기억한다. 이것이 하나의 사건으로만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아동폭력 방지 대책 구조 정립에 대한 국가적 책임 요구하는 목소리가 지속해서 이어져 나가야 할 것이다.


폭력 피해 경험은 온전한 자립을 어렵게 만든다

“인간이 존재한다 혹은 살아 있다는 근거는, 곧 인간의 몸이 공간의 어느 구체적인 장소에 실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간이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로부터 ‘객관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공간이 인식 주체자의 몸을 기준으로 삼아서만 특정하게 인식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몸이 없다면 공간도 인식되지 않는다. 폭력으로 인해 몸의 주체성을 상실한 여성은 자신의 육체가 머물고 있는 공간과 자기와의 관계성(공간에서 자기 몸의 위치성)을 파악하기 힘들다. 또한 대체로 폭력 당하는 아내의 삶의 공간은 집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집 밖에 존재하는 자신의 모습이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 

—정희진, 2016, pp.223~224


폭력 피해 경험자는 공포의 장소로부터 탈출하여 새로운 장소로 몸을 이동해도 자유를 만끽하기보다는 자기 위치성에 혼돈을 겪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 예로 20년 넘게 남편에 의해 전유 되어 온 여성이 집에서 탈출한 후 공간 지각력을 잃게 되어 광장 공포증을 경험했다고 한다. 또, 성폭행 피해자의 경우 집 밖의 거리를 디딜 때마다 지뢰를 밟는 듯해 주변이 모두 폭발해 버릴 것 같은 공포에 갇히는 경우도 있다. (정희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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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마찬가지로 김수목 님은 무절제한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가하는 남편에게서 탈출하여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했지만, 그 공간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하였고 매일매일 남편이 자신을 해칠 것이라는 공포 속에서 불안한 생활을 지속해오고 있다.


“남편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만 있대요. 지금 엄청나게 스트레스인 상황 같아요. 집을 찾아오기도 한대요. 다른 여자와 동거 중인데도 찾아와서 폭력을 휘두르고 했대요. 우울증 약을 먹지 않으면 잠도 못 잔대요. 그래서 약에 계속 의존하게 된대요. 약 먹으면 공포도 덜해지고. 남편 문제가 시원하게 해결이 안 되고 매번 위협적으로 다가오니까, 이럴 바에는 빨리 생을 마감해도 좋지 않을까 한다네요. 실제로 도서관 가서 죽음과 관련된 책도 빌려보고 했대요.”

— 김수목 님


또한 아동·청소년기 때 경험하는 폭력은 전 생애에 걸쳐 성장 발달을 방해하는 위험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지속해서 드러났다. 아동기의 트라우마로 인해 자아 존재감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였고, 사람과의 갈등 상황이 발생하면 스스로 학대하는 일이 자주 생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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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 님은 아동기 시절의 신체적 폭력에 대한 불쾌감과 무서움이 자라면서 서서히 사라졌다고 믿었지만 청소년기 시절부터 어느 순간이 되면 갑자기 몸이 반응하는 이상 징후를 느꼈고, 성인이 되어서도 그 징후가 나타나는 날이면 자신에 대한 학대로까지 이어졌다.


“예전에는 나쁜 일 당했던 것을 계속 기억을 못 하다가,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어요. 중학교 때 아빠한테 많이 맞았는데 그것도 폭발되고, (너무 어려서 당했던 일이라 기억에 전혀 없던) 새 아빠 이름도 갑자기 생각이 났고, 그때부터 되게 많이 힘들었었고, 지금은, 많이 무뎌졌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그 힘든 감정이 계속해서 문득문득 찾아와요. 나는 자해를 (이제) 안 한다고 생각했는데, 불과 몇 달 전, 좀 되긴 했지만, 그때 갑자기 또 같은 힘든 감정이 밀려오니깐 자해하는 행동을 막을 수가 없더라고요.”

— 아리 님



“중학교 때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깨진 술병으로 손목을 긋는다든지 했었는데요.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하지 않다가, 몇 개월 전부터 너무 힘들어서 그때도 시도했었어요. 그런 이유가... 친구랑 밖에서 싸우고 집에 들어왔는데, 싸운다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은 거잖아요. 그게 좀 무섭고 마음이 되게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자살방지센터에 전화해서, 내가 힘든 산을 너무 많이 넘어왔는데, 그게 끝이 보이지 않고, 나는 산을 넘어갈 힘이 없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 아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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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순 님의 경우 부모님의 폭력과 싸움을 목격한 것만으로도 자신의 몸 안에서 그 공포를 떨쳐내지 못하고 직접 경험한 사람과 같은 수준으로 어느 순간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 이렇게 몸 안에 내재된 공포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자신을 그리고 삶을 최악의 상황까지로 몰아세울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아빠가 그걸로 엄마를 때리는데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식으로 맞고 있었어요. 그게 진짜 충격이었어요. 아빠보다 엄마가 더 무서워 보였어요. 소리를 지르거나 피해야 하는데 피하지를 않는 거예요. 그렇게 공포스러운 집에서 지내면서 희망 없이 살았는데, 20대 어느 날 이유 없이 갑자기 우울증이 시작되더라고요. 무엇 때문인지 불안증이 오더니 내일 오는 것이 무섭고, 불확실한 미래가 불안해지면서 사람들 만나기도 싫고, 그때부터 일하는 것도 어렵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30대에 생활고로 힘들어지고 우울증은 더 심해졌고, 자해도 스스럼없이 하고, 나중에는 죽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인터넷을 뒤적이기도 했는데요. 그렇게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저를 발견하니 그것도 또 너무 무서웠어요.”

— 정세순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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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일궈가는 주된 공간에서 폭력을 경험하게 되면 그 공간을 더 이상 안전한 곳으로 느끼기 어렵다. 개인의 주거 상황과 경제적 기반이 불안정할 경우, 삶을 안전하게 지켜내는데 취약하여 공포스러운 공간에서 삶을 포기하며 지내거나, 홈리스가 되거나, 개인의 고유성이 발현되지 않는 공간에서 자유를 뺏긴 채 살아가는 선택을 하게 된다.그와 달리 지원주택은 안전과 자유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예전에는 끔찍한 곳이었는데 지금은 저한테 아주 중요하고 안정을 주고 그런 곳이죠.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안전한 곳이고, 지금 지원주택 들어와서.”

— 이혜랑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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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제, 민소영(2020)의 지원주택 거주 경험 연구에서는 지원주택을 고유한 인간성이 재발현되는 중요한 통로라는 것을 확인하며 ‘자유 의지를 지닌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해석했다. 본 연구에서도 거주자들이 지원주택을 통해 온전한 나를 느끼며, ‘해방감’과 ‘자유’를 누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설의 무력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 그리고 혼자서 다 하고 먹고 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 이용찬 님



“여기 처음에 이사 왔을 때 내가 밤새도록 질렀던 소리가 있는데 "후리덤"이에요. 나는 이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고 밤새도록 소리쳤어요. 여기서 생활이요? 제약을 안 받잖아요.

— 호영선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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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지원주택은 강제되고 지배당하는 삶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이 치유되고 회복되어 미래로 걸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공간으로서 그 의미를 확장해볼 수 있다. (나영정 외, 2020)


지원주택 입주를 앞둔 정세순 님은 노숙의 불안에서 벗어나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생기는 것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했다.

“나한테 이제 희망이라는 게 오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혼자만의 공간이 생기는 거잖아요. 집이 곧 희망인 것이죠. 추우면 안에 있을 수 있고, 더우면 에어컨도 틀 수 있고. 내가 가서 누울 자리가 있는 거 하나만으로도 좋아요. 옛날 집은 허허벌판에 아무것도 없는 느낌이라면, 지금은 햇빛이 있는 따뜻함이 느껴져요. 예전에는 빛을 보기 싫어서 항상 암막 커튼을 해놨어요. 근데 지금은 커튼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햇빛을 맘껏 받고 싶어요.”

— 정세순 님


즉, 지원주택은 단순히 거주하는 공간을 넘어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희망의 공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거주 공간만으로 온전하게 삶을 새롭게 재건할 수는 없다. 특히 폭력 피해 경험자들에게 더욱 세심한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대물림되는 폭력 근절을 위해서도 사회 전체가 인권감수성을 키우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지원주택은 폭력 피해 경험자가 안전하게 새로운 삶, 좋은 삶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고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개인별 맞춤 지원 서비스를 갖추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