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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일할 수 있을까?


인간에게 일은 무엇인가.
일을 통해 관계를 맺는 인간은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이해한다. 일에 얽힌 욕구를 실현하며 자아를 실현한다. 이처럼 인간은 일을 통해 삶을 유지할 뿐 아니라 삶의 가능성을 확장해나간다고 볼 수 있다. 
루소의 말처럼 일을 통해 ‘재탄생'한 인간은 확장된 가능성 속에서 주체적으로 삶의 방향성을 결정하고, 자신이 원하는 ‘좋은 삶'으로 나아간다. 일은 삶의 가능성을 확장한다는 점에서 좋은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중요한 조건이다.

삶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좋은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은 그 필요성과 달리 모두에게 접근 가능한 것이 아니다. 
좋은 삶의 조건으로써 일이 갖는 의미가 주목받지 못하고, 일이 곧 임금노동으로 치환되면서 일의 기회는 가치생산에 유리한 특정한 ‘생산성’을 갖췄을 때 주어지는 것이 되었다. 생산성을 갖추지 못한 이들은 정상성 담론에 기초해 ‘비정상’으로 간주되며 일의 기회로부터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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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동일성’은 생산성을 갖춘 몸으로부터 만들어진다. 따라서 생산성을 갖추지 못한 몸은 ‘동일성’을 위협하는 ‘다름'으로 받아들여져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된다. (이병국, 2021)


“면접에서 많이 하시는 말씀이 이거 할 수 있겠냐, 이거 할 수 있겠냐를 많이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는 당연히 일을 해야 하니까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리는데, 근데 저에 대한 한계를 많이 보시더라고요. 장애인을 뽑는 직종인데도요.”

—정효원 님



“현실적으로 볼 때. 이런 장애를 가지고 어디 가서 취업을 한다는 자체가 참 힘들어요. 현실의 벽이라는 게 너무 높더라고요. 저도 엄청나게 시도를 해 봤어요. 자격증 가지고 있고 막 이렇게 해서 오픈해서 이야기를 해 봤거든요. 그런데 다 '노' 하더라고요. 사장님들이 안 된다고 그래서 제가 거기서 벽에 부딪히고. 정신장애가 없는 일반인들하고 정신 장애 있는 사람도 별반 차이가 없거든요.”

—유제식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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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고용차별 및 경제활동 실태조사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시행 후 장애인에 대한 채용 거부는 제한되고 있지만, 장애인에 대한 고용차별은 여전히 빈번하다. 2016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이 발표한 장애인 고용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7.7%가 ‘채용 과정에서 차별을 느낀다’고 답했고, 이 중 38.1%가 ‘차별이 심하다'고 답했다. 이러한 차별은 장애인들의 경제활동 현황을 통해 나타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2020년 장애인경제활동 실태조사는 우리나라 만 15세 이상 등록장애인 중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비율이 37.0%에 그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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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인권종합보고서

“일자리는 뭐 내가 기술도 없고 그러니까 몸이 안 아프고 그럴 때는 막노동을 했는데, 이제는 힘이 없어서 못 하겠어. 정부가 도와주면 좋겠지만, 정부에서 그게 되나 안되지.”

—이제의 님



노인 역시 우리 사회에서는 생산성을 갖추지 못한 몸으로 간주되며, 정상성에 기초해 차별과 배제를 경험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행한 노인인권종합보고서에 따르면 노인의 58.6%가 나이 제한으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상성에 갇힌 일은 장애인이나 노인과 같이 생산성을 갖추지 못한 ‘다른’ 몸을 ‘노동 능력 없음’으로 치부한다. 일할 기회를 잃어버린 이들은 관계의 확장이나 자아정체성의 형성 등을 경험하지 못한다. 또 사회에 대한 책임과 권리가 정상성을 갖춘 이들에게 집중되면서 정상이라는 범주에 들지 못한 이들은 의존적이거나 종속적인 존재가 된다. (나영, 2015)

즉 정상성에 갇힌 일은 단순히 일의 기회를 차별적으로 분배하는 것을 넘어 정상 범주에 속하지 못한 이들을 배제함으로써 그들이 추구하는 좋은 삶에 기초해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한한다.


일은 삶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며 좋은 삶을 추구하게 한다. 때문에 일할 기회가 모두에게 차별 없이 주어지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정상성의 논리는 일할 기회를 제한하고, 삶의 가능성을 축소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금노동으로 한정된 일의 의미를 확장시키고 정상성으로부터 일을 분리하기 위한 노력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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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이하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그 노력의 일환으로, 기존의 경제구조 안에서는 일로 인정되지 않았던 권리 생산 활동들을 일로 규정함으로써 임금노동 중심의 일의 의미를 확장했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민간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중증장애인과 탈시설 장애인을 대상으로 헌법에서 보장하는 일할 권리를 제공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서울시가 제공하는 공공일자리이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유형에는 장애인 권익옹호활동, 문화예술활동, 장애인 인식개선활동 등 세 가지가 있으며, 편의시설의 장애인 접근성을 모니터링하거나 장애인 인식개선 강의를 하는 등의 활동이 포함된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일할 수 없는 몸'으로 규정되어온 장애인들의 일할 권리를 실현시키며, 권익옹호 및 인식개선 등의 활동을 통해 충족되지 못한 권리를 생산(정창조, 2020)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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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중심 공공일자리를 통해 6개월 간 일을 한 호영선 님은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 ‘생산성이 눈에 보이거나 효율이 확 눈에 띄는 그런 일이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호영선 님의 말처럼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기존의 일 담론을 넘어서는 시도로, 당사자들에게 생산성이나 효율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표준화와 정상화에 정면으로 반발하며, 중증장애인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것을 사회에 요구한다. (정창조, 2020)

일 그 자체로 좋은 삶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일을 통해 좋은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의 의미가 개인이 추구하는 좋은 삶에 호응해야 한다. 하지만 임금노동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일은 개인의 다양한 좋은 삶을 반영하기에 그 의미가 협소하다. 따라서 일이 좋은 삶에 호응하기 위해서는 그 의미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도록 확장되어야 한다. 

장애운동계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것도 일이다' 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개인이 추구하는 좋은 삶에 기초해 일의 의미를 다양하게 확대하기 위해서는 ‘이것'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연구참여자들의 일 경험은 ‘이것’을 상상해보는 데 실마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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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순 님은 여성노숙인의 자립을 돕는 공간에서 유급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거리노숙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정세순 님도 한때는 그 공간의 이용자들 중 한 명이었다. 사회복지사의 권유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정세순 님은 선생님들의 회복과 자립을 진심으로 바라며 일을 하고 있다.


“저도 선생님들처럼 부업을 하는 사람이었어요. 저도 여기 계속 다니다 보니까 뭐 선생님들의 추천으로 ‘일을 해보면 어떻겠냐, 유급 봉사자로’, 근데 저도 걱정을 너무 많이 해 가지고, ‘잘 할 수 있을까' 그때 선생님이 한번 해보라고 그래서 이제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재밌는 것보다는 보람이죠. 선생님들하고 소통하고, 저보다도 힘드신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심적으로. 그런 거 보면 선생님들이 좀 약을 잘 드시고 재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것에 안타까움이 약간 있어요.”

—정세순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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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의존증을 가진 한만석 님은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인 동료들을 돕기 위해 동료 상담가 교육을 받고 있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알코올 중독으로 갑작스럽게 목숨을 잃는 동료들을 지켜보면서 한만석 님은 ‘같이 살아가는 길'을 찾게 되었다. 짧지 않은 교육 과정이지만 한만석 님은 자신과 동료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동료 상담가의 길을 준비하고 있다.


“다른 친구들은 나 있을 때 죽었는데, 어 그게 남 일 같지 않더라고. 이게 내 일이구나. 이게 내 모습이구나. 그래서 그 동료상담가를, 내가 그냥 뭐 약간의 뭐 소일거리 되고, 동료를 위해서 이렇게 동료상담가를 받는다는 게, 조금 같이, 같이 살아가는 길 같아서.”

—한만석 님


두 연구참여자의 일은 공통적으로 정상성을 요구하는 대신 거리생활의 경험이나 중독과 같은 과거 경험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며 활용하게 한다. 임금노동 중심의 사회에서 ‘일할 수 없음’의 조건으로 간주되는 이러한 경험들이 새로운 가치를 부여 받으면서, 일은 정상성을 탈피하고 그 의미가 확장된다.

우리는 개인의 취약성을 중심으로 일의 의미가 확대되는 상상을 해볼 수 있다. 두 사례처럼 개인의 취약성을 ‘일할 수 없음’의 조건으로 치부하지 않고, 오히려 ‘일할 수 있음'의 조건으로 재해석할 때, 개인의 취약성은 불가능의 조건이 아닌 가능성을 지닌 역량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정상성 담론에 균열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일로부터 배제되었던 이들의 사회 참여 기회를 확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