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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와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


좋은 삶을 위한 관계망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관계'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타인과의 구분을 통하여 자아를 형성해나간다. 최초의 친밀한 타인인 가족 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관계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현재와 미래의 생활을 기획해간다.


특히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관계 속에서 타인과 삶을 공유할 때, 즉 돈이나 서비스를 매개로 하지 않는 고유하고 인간적인 연결을 마주할 때 생존을 넘어서 삶이 꽃피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곧 인간은 누구나 서로의 도움이 필요하며, 서로에게 존재를 의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타인의 돌봄이 필요한 취약하고 의존적인 상태는 인간의 삶에 내재한 속성이다. 


인간의 삶에 불가피한 돌봄은 ‘관계’라는 통로를 통해 흐른다. 영국의 더 케어 컬렉티브가 작성한 <돌봄 선언>을 참고하면 돌봄은 서로 간의 직접적인 보살핌을 뛰어넘는 훨씬 광범위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 ‘돌봄'은 사회적 역량이자, 복지와 번영하는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보살피는 사회적 활동이다. 무엇보다도 돌봄을 중심에 놓는다는 것은 우리의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y)을 인지하고 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 케어 컬렉티브, 2021, p.17 


여기서도 상호의존성에 대한 포용과 긍정이 강조된다. 동시에 좋은 돌봄은 개인의 자율성을 증대시킨다(헬드, 2017)는 점을 상기하면, 의존과 자율은 상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돌봄을 주고 받으며 서로 잘 의존하는 상호부조의 세계에서 더 안전하고 자유로운 삶을 꿈꿀 수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관계 안에서 좋은 돌봄이 오갈 수 있을까? 모든 관계는 유동적이다.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하나의 관계도 여러 속성을 갖는다. 혈연가족이라 해서 곧장 긍정적인 관계만을 의미하지도 않고, 시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해서 부정적인 관계만을 경험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본 연구의 관심은 가족이나 친구 등 관계의 본질적인 속성이나 기대되는 규범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 특정한 관계가 배양되는 지를 연구참여자들이 경험해온 관계들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가 사회 안에서 좋은 삶을 이루기 위해 추구해야 할 관계, 지원하고 지지해야 할 관계는 어떤 것인지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한국 사회는 사회적 돌봄, 즉 복지가 부재한 자리마다 ‘가족’을 소환하여 우리 사회의 우선적인 돌봄 인프라로 여겨왔다.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전희경이 ‘시민으로서 돌보고 돌봄 받기’에 쓴 것처럼 “가족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개인'도 ‘사회'도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 사회가 가진 상상력의 한계라 할 수 있다. 관계에 관한 논의를 ‘가족’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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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국 사회의 문화적 바탕에는 강력한 가족주의와 함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깔려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란 “결혼제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을 이상적 가족의 형태로 간주하는 사회 및 문화적 구조와 사고방식”으로, “바깥으로는 이를 벗어난 가족 형태를 ‘비정상'이라 간주하며 차별하고, 안으로는 가부장적 위계가 가족을 지배”하여 “정상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가족이 억압과 차별의 공간이 되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김희경, 2019, p.10 


이런 상황에서 핵가족 중심의 돌봄체계를 정상화하기보다, 더 확대된 돌봄공동체를 꾸려가도록 하는 사회적 인정과 공적 지원은 여전히 부재하다. 공동체 차원에서 모두가 함께 돌봄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의식 또한 부족하다. 이는 신자유주의 사회 내의 무한경쟁, ‘내 가족' 우선주의, 각자도생 문화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돌봄 위기가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되었음에도, 돌봄의 의미를 확장하고 이를 근본적인 사회 구성원리로 삼아 거듭나야 한다는 데까지 논의가 나아가지 못한다. 돌봄을 친족 관계 내의 문제로 제한하려 한다. 그러나 가족이 없는 이들, 혹은 가족이 있더라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은 손쉽게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특히 장애와 질병이 있는 이들은 시설화되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어렵다. 연구참여자들의 이야기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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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영선, 이용찬 님은 장애를 이유로 시설에 보내지며 가족과의 관계가 단절된 경우다. 가족이 제공하는 사적돌봄 만으로 서로의 삶을 지속할 수 없었기에 시설이 유일한 선택지로 여겨진 것이다.

호영선 님은 사고로 장애를 얻게 된 후 처음으로 ‘시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면서 지역에서 살아갈 수 없다고 느끼며 시설에 들어오게 되면서 “발목 잡지 않기 위해" 아내와 이혼을 택한다.

이용찬 님은 가족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결정할 때 본인이 시설에 들어가면 가족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가족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고, 곁에서 지내고 싶었음에도 장애인으로서 지역사회에서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친밀했던 관계는 그렇게 끊어지고, 시설 안에서의 고립과 단절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며 살았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자립 생활에 도전하며 시설 밖으로 나오게 되었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연락이 끊겼다. 혹은 아주 멀리 살고 있었다. 그래도 멀리 사는 가족들이나마 초대할 수 있고 재워줄 수도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은 큰 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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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어린 시절 가정 내 폭력과 학대를 경험한 이들의 경우에는 ‘가족'이라는 이름에 긍정적인 감정을 담기 어렵다.

“우리 엄마 이거 사줬다 아니면은, 놀러 갔다 뭐, 길 가다가도 (다른) 엄마가 막 이렇게 귀여워 해주고 이렇게 해주고 하면은 저는 그게 이상해 보였어요. 어렸을 때 정상적이지 않게 보였어요. 내가, 내가 정상인 거예요. ‘(어떻게) 저렇게 다정할 수 있지’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니까 더 이상해 보이는 거야, 참.”

— 이혜랑 님


어머니의 폭력과 아버지의 방임으로 인해 10대 시절부터 거리 생활을 경험했고, 정신장애인 시설을 거쳐 현재 지원주택에 살고 있는 이혜랑 님의 최근 취미는 TV에서 재방송 해주는 드라마 '전원일기'를 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작 본인의 가족을 떠올렸을 때, 어떤 행복감을 가져본 기억은 없다. 어머니의 고된 노동과 시집살이의 괴로움에 대해 이해해보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향한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은 애틋해진 어머니에게 지금와서라도 어린 시절의 학대에 대한 사과를 받고 싶지만,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혜랑 님의 경험 세계에서는 다정한 어머니의 모습이 오히려 '정상적이지 않게' 느껴졌다. 폭력을 가하던 어머니를 유일하게 저지하던 옆집 아주머니도 정작 본인의 딸을 또다시 학대하던 모습을 보며 자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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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 님 또한 부모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으로 10대 후반에 탈가정을 결심한 경우이지만 구체적인 관계 양상은 다르다.

“가장 큰 요인은 부모님, 특히 엄마였는데 엄마가 친구가 없으세요. 친구도 없고 어떤 밖에서 만나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엄마가 어릴 때부터 되게 아들들을 많이 사랑해줬어, 그 집착 그랬어요, 조금. 근데 제가 뭐 아들이 여럿 있으면 딸 같은 애 하나씩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저였는데 그래서 이제 어릴 때부터 점점 시간이 갈수록 엄마가 저한테 의지하고 저한테 매달리는 거예요. (...) 한번 그런 적이 있었어요. 제가 있을 때 엄마가 빨래를 널고 돌아오신 거예요. 엄마가 말씀을 하신 게 우리 아들이 어릴 때는 엄마 햇빛 알레르기 있으니까 더우니까 여름에 수건 이렇게 들고 뒤에 가려주고 있었는데 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들으니까 딱 그냥 이미지가 떠오르는 게 내가 평생 엄마를 그렇게 가려주면서 엄마를 이렇게 막아주면서 살 수도 있겠다. 평생 엄마한테 수건 들고 살 거 같다는 느낌이 든 거예요. 그게 되게 무섭더라고요.”

— 이인 님


이인 님은 엄마에게 살가운 아들, 다정한 가족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는 기대를 충족시키고자 가족 내 다양한 감정노동, 집안일을 해오면서 점점 지쳤다. 그 과정에서 이인 님은 부모와 자녀 관계를 넘어서 인간 관계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다는 게 무엇인지, 기대를 한다는 게 무엇인지 그것이 ‘가족'이라는 특수 관계 안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돌아본 것이다.

“엄마, 그러니까 부모랑 자녀 관계가 저는 그렇게 특별하게 생각하진 않는데. 어쨌든 관계를 맺어서 지금까지 연이 이어진 존재인 거잖아요. 저는 애초에 사람을 못 쳐내는 거 같아요. (...) 자식 관계가 별 거 아니라고 해도 저도 이게 학습된 건지 아니면 진짜 정이 있는 건지. 엄마니까.”

— 이인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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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관계 안에서 물리적 폭력이 없다고 해서, 곧장 안전하고 자유로운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지지하고 사랑하고 돌볼 것인지, 사람을 성숙하게 하는 기대와 짓눌리게 하는 기대의 차이는 무엇인지, 가족 안에서 개별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적절한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 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인 님과 마찬가지로 10대 후반 탈가정을 한 아리 님은 자립을 위해 끊어내야 하는 것으로 ‘가족'을 얘기했다. 동시에 폭력을 행사하고 방치했던 '등본상의 가족'을 대신해,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믿는 이들과의 관계를 떠올리면서 ‘가족'의 의미를 스스로 재정의 하려는 마음도 있다.


“집을 계약할 때도 어쨌든 계속 가족과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그런데 그런 게 좀 사라졌으면 좋겠다... 연결되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계속 봐야 하는 상황이 오고. 만약 돌아가신다 하더라도 사실 제가 또 그걸 감당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 상황도 너무 이상한 거 같아요. 끊어내야 하지 않을까 싶고.”

“가족… 가족이란… 음… 등본상에 있는 것만이 가족이 아니다. 가족의 의미, 정의는 내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해요. 저는 싸워도 끝이라는 게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하에 싸우기도 하고 밀기도 해요. 그런 마음이 통하기도 하고 그 사람이 무슨 일, 좋은 일 나쁜 일 있을 때 정말 진심으로 저도 대하지만 그 사람이 나에게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그게 가족 아닐까 싶어요.”

— 아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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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보호시설에서 자라온 신선 님 또한 우리 사회가 말하는 ‘정상가족’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 대신 그저 "서로를 지켜주고 사랑해주는 관계들"만이 존재할 뿐이며 가족은 그 관계들을 부르는 하나의 명칭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시설 내 인간적인 관계가 가능했다고 해서 시설 수용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점은 잠시 짚어둘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정상가족에 대한 편견이 만연해 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가족을 아버지, 어머니 모두를 포함하고 있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 가끔씩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부모님이 무슨 일을 하는 지를 묻는 질문에 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는다고 밝힐 때면, 그들의 동정 어린 시선에서 저의 가정 형태가 정상이 아니구나 라고 느껴야만 했습니다. 이 사회에는 보호종료아동 뿐만 아니라 다문화가정, 조손가정, 한부모가정 등 다양한 가정 형태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당연하게만 물었던 질문들을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다시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의 직업이 무엇인지? 가족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등. 끝으로 저는 이상적인 가족, 정상적인 가족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지켜주고 사랑해주는 관계들이 있을 뿐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가족은 유년시절부터 함께 시간을 보낸 보육원 선생님들, 친구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신선 님

이처럼 현실에서 각자가 경험하고, 기대하고, 구성해온 가족의 모습은 다종다양하다. 가족을 신성한 것으로 여겨 폭력을 휘둘러도 개입할 수 없는 사각지대로 두거나, 가족이라는 관계에 사회적 돌봄의 의무를 모두 덧씌우던 시스템을 전환해야 한다. 특정한 규범에 부합하는 ‘정상가족'만을 가족으로, 그 외의 관계들을 그에 못 한 것으로 폄하하기보다 각자가 추구하는 다양한 좋은 삶의 모습 안에서 시도하는 여러 관계들이 합당한 존중과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모두에게 필요한 돌봄의 관계망을 촘촘하면서도 넓게 만드는 사회의 역량을 키우는 방향일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가족이니까' 돌볼 때, 우리는 부정의한 가족규범 또한 돌보게 된다. 나아가 ‘가족이니까' 돌본다는 대답은 돌보는 사람과 돌봄 받는 사람의 관계를 다른 사회적 관계들로부터 고립시킨다. 그리고 고립된 가족일수록 “역시 힘들 때는 가족밖에 없다"라는 주문을 되뇌기 쉽다.” 

 —김영옥·메이·이지은·전희경, 2020, p.65 


혈연가족/원가족과 그 밖의 관계들 간의 위계에서 벗어나 관계를 둘러싼 상상력을 확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또 “부정의한 가족규범”을 재생산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은 가족 관계를 본 따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다양한 관계들을 충분히 발견하고 인정하는 데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참여자들이 경험해온 다양한 관계들에서 어떤 돌봄이 이루어졌는지 살펴보았다.


🧑‍🤝‍🧑

현 지원주택 거주자들은 지원주택이라는 공간을 디딤돌 삼아 관계의 변화를 경험했다. 나아가 이러한 관계는 이들이 꿈꾸는 좋은 삶의 주요한 구성요소가 된다.

유진화 님은 두 살 때부터 장애인 시설에 살았다. 유진화 님에게는 그때부터 쭉 함께 지냈고, 중학교 때 그룹홈 생활을 거쳐 각자 자립생활을 하기까지 가깝게 지냈던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즐겁기 때문에, 지원주택으로 이사를 나올 때 그 친구와 한집으로 배정받고 싶었지만 착오가 생겨 그렇게 되지 못했다. 자립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어려움과 더불어 늘 의지했던 친구와 함께 지낼 수 없다는 상황에 절망한 결과 심한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유진화 님의 꿈은 언젠가 그 친구와 한집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용찬 님의 경우 시설에서 운영하는 체험홈에 오래 거주했음에도 그곳에서 함께 지낸 이들과 어떤 인간적인 관계 맺음이 불가능했고, 소위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공급형 지원주택에서 자립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은 함께 자립한 사람들과 왕래하며 친하게 지낸다. 심지어 그때 자신을 가장 괴롭게 했던 사람과 관계를 회복하여 즐겁게 지내고 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

한만석 님의 사례를 통해서는 ‘회복'의 여정에서 만난 동료들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한만석 님은 알코올 의존으로 인해 관련 시설에 수차례 입·퇴소를 반복하다가 지원주택에 정착하여 자립 생활을 이어간다. 한만석 님은 알코올 의존증이 있는 지원주택 이웃들과 죽지 않고 함께 살아가도록 돕고 싶어 장애인 동료상담가 교육에 참여했다. 알코올 의존과 ‘싸우며'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적 낙인의 대상이기도 하고,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어려움을 감당해야 하고, 변화하고자 노력하고 좌절하는 지난한 과정이 동반된다. 한만석 님은 그 구체적인 내용을 가장 잘 이해하는 당사자로서, 대체불가한 동료로서 '같이 살아가는 길'을 추구한다.


“여기 동료들이, 보면 막 여기서 사람이 셋이 죽어 나갔어요. 셋이 죽어 나갔는데, 첫 번째 죽은 애는 알코올 때문에 죽었는데, 뭐 쇼크 상태에서 죽었다 그러더라고요. 근데 뭐 그 친구는 내가 여기 없을 때 죽었고, 다른 친구들은 나 있을 때 죽었는데, 어 그게 남일 같지 않더라고. 이게 내 일이구나. 이게 내 모습이구나. 그래서 그 동료상담가를, 내가 그냥 뭐 약간의 소일거리 되고, 동료를 위해서 이렇게 동료 상담가 (교육을) 받는다는 게, 조금 같이, 같이 살아가는 길 같아서.”

— 한만석 님


❤️‍🩹 

이혜랑 님 또한 지원주택에서 만난 이웃들과 함께 나이들어가는 미래를 꿈꾼다. 과거에 힘들었던 일들을 털어놓기도 하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에 곁에 있어주고자 한다.


“여기 주위에 있는 언니들이나 동생들이나 그냥 그게 딱 좋은 것 같아요. 여기서 이제 살면서 같이 늙어가잖아요. 한 5년 되면 제가 또 50이고 또 저기 앞에 있는 언니는 60이고. 뭐 같이 늙어가니까 충분히 여기 사는 사람들이랑 재밌게 지내고 있어요, 지금. 밥도 같이 먹고요. 살아온 얘기는 거의 다 알죠.”

— 이혜랑 님


이주여성 동료들과의 상호부조 공동체(안순화 님)

아이를 돌보고

교육하고

사회적 편견에 맞서는 네트워크

한편 지원주택 거주자는 아니지만, 사적인 필요에서 출발해 공적인 활동으로 관계가 확장된 사례도 있다.

안순화 님은 남편의 가정 폭력으로 인한 이혼 후 자립과정에서 사회적 소수자인 이주여성 동료들과 상호부조 공동체, 즉 자조모임을 만들었다. 아이를 돌보고, 교육하고, 사회적 편견에 맞서며 네트워크를 확장한 이주여성 동료들의 존재가 사회적 활동의 원동력이자, 기댈 언덕이 된 것이다.

이러한 동료들과 삶을 공유하고 활동을 일구어온 안순화 님의 실천은 “친밀함과 돌봄의 네트워크와 플로우가 관계의 기초 단위로서의 가족을 대신할 수 있다”고 주장한 사회학자 사샤 로즈닐과 셸리 버전의 연구를 떠올리게 한다.


“영국의 여러 지역에서 1차 돌봄 제공자가 친척이나 배우자가 아닌 친구인 경우가 많았다. 친구들이 같이 살면서 서로의 아이들을 돌보고, 아프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고통을 완화하는 돌봄을 수행했다. 문제는, 지금도 여전하지만, 이런 친구 관계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의사결정 능력이나 돌봄에 필요한 지원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았고 장기적으로 그들의 상황이 안정성을 잃도록 만들었다.”

— 사샤 로즈닐⋅ 셸리 버전, 2004; 더 케어 콜렉티브(2021)에서 재인용


🔑 

탈가정 후나 시설에서 생활할 때 의지하며 삶을 나누는 이들의 존재는 소중하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더 넓은 사회, 더 많은 자원과 단단한 성장으로 이끌어주기는 어려운 또래집단의 작은 원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이때 일터 혹은 지역사회에서 만나게 되는 어떤 관계들은 각자의 고유한 잠재력을 일깨워주고 그간의 고립 혹은 막막한 상황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장애를 이유로 자신의 의지와 가능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정효원 님은 많은 거절의 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정효원 님은 비장애인들 중심의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익혀야만 했고 그들의 요구와 속도에 맞춰 살아가야만 했다. 그런데 현 직장의 상사는 자신의 업무를 직접 디자인해보라고 제안했다. 그 제안을 받고 자신이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들을 고민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업무로 ‘선택’했다. 이러한 경험은 그동안 일방적으로 요구받고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해(즉 생존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던 방식과 다른 것이었다. 정효원 님의 동료들은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역량과 선호 안에서 스스로의 삶을 ‘디자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보여진다.


“그걸(영상편집)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동료분들이 실수를 해도 혼내시는 게 아니라 기다려주시고 피드백을 주시니까 저는 되게 감사한 거예요. '아, 이분들이 나를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시는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느꼈어요. 그러다 보니까 좀 더 자신감이 생기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자신감이 생긴 거예요.”

— 정효원 님


그러나 누구나 이런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다. 정효원 님 또한 현재의 직장에 오기 전 여러 일터에서 좌절한 경험을 갖고 있다. 적절한 보호의 부재, 장애나 질환, 폭력에 노출된 경험 등으로 인해 더 나은 삶을 상상하기 어렵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우리가 만난 연구참여자들의 생애서사에는 여러 시민단체나 조직, 기관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조력자들의 활동 또한 ‘사회적 돌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을 통해 용기를 내서 자립생활에 도전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지역사회의 자원과 연결된다.

조력자들의 활동 : 사회적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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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은 호영선 님의 자립생활에 도전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줬다. 시설을 나가고 싶은 동시에 오래전에 떠나온 시설 밖의 삶이 두려워 망설인 시간이 길었던 호영선을 끈질기게 설득한 것이다.


“많은 도움을 준 친구가 있는데요. 이음 센터 가서 보면, 거기 이음 센터 소장도 그렇고 몇몇 직원분들도 나 향유의 집에 있을 때 여러 번 나를 방문을 했었어요. 지금 정부 정책이 이렇게 돼 있고 마침 좋은 루트가 생겼으니까 한 번 부딪혀보지 않겠냐고. 여러 친구들이 내 머릿속에 세뇌를 시킨 거죠. 그래서 자의 반, 타의 반이라는 소리를 썼던 것 같아요.”

 — 호영선 님 


☂️

거리와 시설 생활에 지친 정세순 님에게 자립을 준비하며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되어준 열린공간함께는 이제 그의 일터가 되었다.


“열린여성센터는 매일 출근해요. 저도 여기 계속 다니다 보니까 뭐 선생님들의 추천으로 ‘일을 해보면 어떻겠냐, 유급봉사자로’, 근데 저도 걱정을 너무 많이 해가지고, ‘잘 할 수 있을까'... 그때 선생님이 한번 해보라고 그래서 이제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재밌는 것보다는 보람이죠. 선생님들하고 소통하고, 저보다도 힘드신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심적으로. 그런거 보면은 선생님들이 좀 약을 잘 드시고 재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것에 안타까움이 약간 있어요. 힘들 때 옆에서 있어 주는 게 좋아요. 여기 와서 사람들하고 관계하고 이야기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정세순 님


지원주택 또한
'사회적 돌봄'의 공간이다.
특히 지원주택 내 코디네이터(사회복지사)의 존재가 지원주택을 기존의 임대주택과 다르게 만든다. 원하는 취미생활, 배움, 활동지원사와의 연결, 일자리 연계 등 다양한 측면에서 개개인이 좋은 삶을 실현하도록 지원하고자 한다. 입주자 개개인의 성향을 고려하여 지역사회의 여러 관계 및 자원과 연계해 주고 지원주택 내에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최근 코로나 확산으로 지역사회와 다방면으로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 아쉬운 상황이지만, 지원주택에서 함께 지내는 이웃들과 왕래하며 고립감을 줄일 수 있다는 것 또한 큰 장점이다. 자립생활을 시작한 직후 겪는 심리적 위기 상황에서도 가까이에 고민을 나누고 의지할 수 있는 이들 덕에 서서히 헤쳐나갈 수 있었던 사례도 존재한다. 지원주택이 제공하는 여러 지원 서비스를 지탱하는 근간이 ‘관계’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 살펴본 여러 관계들의 밑바탕에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 맺음이 자리한다.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타인과의 관계에도 반영되기 마련이다. 장애를 내면화하며 친구와의 관계에서 지레 방어막을 치곤 했던 과거의 정효원 님처럼, 장애나 질환 혹은 트라우마와 같은 기억은 자신을 온전히 긍정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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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식 님의 일상의 루틴을 새롭게 구축해가는 노력

규칙적인 약 복용

출퇴근으로 이루어진 일상

그러나 오랜 시간에 걸친 시행착오를 통해 일상의 루틴을 새롭게 구축해가는 노력 속에서 그러한 특성도 자신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된 유제식 님의 사례가 있다. 유제식 님은 규칙적인 약 복용과 출퇴근으로 이루어진 일상을 기반으로 하여 파트너와의 미래를 꿈꾼다.


“처음에는 받아들이기가 좀 힘들었죠. 왜 나한테 이런 병이 있어야 하고 내가 뭘 잘못했기에 내가 왜 이런 병을, 진짜 몹쓸 병을 갖고 내가 살아야 하고. 평생 약을 먹어야지만 내가 일상생활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고. 너무 억울하고 좀 분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근데 지금은 이제 그런 생각은 안 하려고 하죠. 왜냐하면 지금은 옆에 내가 지켜줘야 할 여자친구도 있고. 그리고 어떻게 보면 내 울타리가 있으니까. 그 울타리를 내가 잘 지켜나가야 하고 가꿔나가야 하니까 그런 생각은 안 하죠. 지금은 많이 행복하고 나도 안정이 많이 됐으니까.”

—유제식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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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돌보는 일 가운데 스스로의 감정에 귀 기울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공간을 만나고서야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감정들을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경험이 여러 연구참여자에게서 공통으로 발견되었다.


이용찬 님은 무허가 시설에서 20년간 살다가, 다른 시설로 옮기며 자립 생활을 준비하게 되었다. 두 번째 시설은 그나마 환경이 나았고, 탈시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사회복지사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기도 했다. 그럼에도 첫 번째 시설에서 온갖 반인권적인 대우를 받으며 살았던 일은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자립 생활을 시작하고, 집 안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후에야 그 시절의 기억이 밀려왔다. 처음에는 어찌할 줄을 몰라 괴로워했지만 이제는 그 시절의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탈시설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과정 속에서 고통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치유하고 있다.



유진화 님 또한 시설에 사는 내내 부당하고 괴로운 일들을 참는 데 익숙했다. 자신이 참고 있다는 것조차 잘 모를 만큼 잘 참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원주택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졌다. 과거에 힘들었던 일이 방둑이 터지듯 밀려든 것이다. 겪어본 적 없는 깊은 우울 때문에 혼자 잠을 잘 수도 직장에 나가 일을 할 수도 없었다. 유진화 님은 코디네이터 선생님과의 인간적인 교류와 진심 어린 위로 덕분에 그 시기를 버티고 지나왔다. 열린여성센터를 통해 만난 선생님이 제안한 대로 스스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준다는 정세순 님처럼, 이제 유진화 님 또한 자신을 아껴주려고 노력한다. 심한 우울과 침잠의 시기를 견뎌낸 스스로에게 스마트워치를 선물한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제 자신한테 선물해주고 싶어서 샀어요. 그냥 고생했다고. 마음고생하고 힘든 일도 있고. 그래서 선물을 해주고 싶었어요.”

—유진화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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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 님의 자립 준비 사례

아리 님은 탈가정 후 수많은 규칙과 감시 때문에 몸에 맞지 않는 그룹홈과 쉼터를 전전하다가 엑시트와 같은 법인에서 만든 ‘청소년자립팸 이상한 나라(애칭 앨리스집)'에 입주했다. 그 후에야 마음의 긴장을 풀 수 있었고, 거주할 수 있는 최장 기간인 2년 중 처음 1년간은 오롯이 그곳의 선생님에게 울고, 이야기하며 '감정을 쏟아내는' 시간으로 보냈다. 그제서야 그 후 1년간 일하고, 집을 구하고, 계획을 세우는 등 자립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런 아리 님에게 자립의 의미란 다음과 같다.


“저는 혼자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내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두 가지가 생길 때. 그때 자립했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일단 함께 살아가려면 이제 그 믿음과 의지가 있어야 되고 이제 나의 고민을 얘기하기도 하고, 그 상대방을 고민을 들어주기도 하고, 함께 해결하기도 하고. 근데 혼자 해결할 수 있는 힘은, 너무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어쨌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선에서는 해결해보고. 이제 그렇게 두 가지 다 병행하면서 합쳐질 때.”

— 아리 님


자신의 힘듦과 애씀을 자신이 가장 먼저 알아채주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때. 그러한 자기 돌봄이 자신과의 관계를 편안하게 할 것이며 내면의 힘이 자라날 여지를 선사할 것이다. 이 과정을 지지해줄 수 있는 관계와,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은 정말 중요하다. 그런 조건과 환경 속에서 “혼자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돌봄은 관계를 따라 흐른다고 했다. 앞에서 살펴본 여러 관계들 속에서 드러나는 돌봄의 양상은 다양하나, 돌봄을 가로막는 요인 또한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낙인과 차별적 시선처럼 사회적인 편견이 야기하는 관계 단절과 고립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모두를 위한 도시'를 위해 사회가 함께 가꾸어야 할 관계망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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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서는 상호의존과 소통에 바탕을 둔, 고립에서 연대로 나아가는 관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를 소외시키고 억압하는 해로운 관계로부터, 자립과 상호의존을 가능하게 하는 관계로의 전환, 시설화와 폭력을 야기하는 관계로부터, 고유한 개인이 좋은 삶을 추구하며 지속가능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지하고 가꾸는 관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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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자의 핵심이 바로 ‘돌보는 관계'이다. 대인 간의 직접적인 돌봄에 한정하지 않고, 그 개인의 삶이 뿌리내린 지역 공동체, 국가, 지구에 이르기까지 확장된 돌봄을 상상해야 한다. 각 층위마다 촘촘한 돌봄의 관계망을 만들기 위한 모두의 노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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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공적인 인프라가 중요한데, 지원주택 또한 이러한 전환을 만드는 중요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 각자도생으로부터 ‘함께 살아가기’로 변화할 가능성을 키우고 모두의 지속가능한 좋은 삶을 가꿀 수 있는 돌봄 공동체로 나아가자는 제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