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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주택을 시작으로

새로운 돌봄 관계를 실험하며 질문을 던지는 집

새로운 돌봄 관계

이러한 돌봄의 패러다임 전환 속에서 ‘지원주택’ 모델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본 연구는 지원주택의 주거 우선 원칙(housing first)과 사람 중심 서비스 (person-centered service) 원칙 및 탈시설 운동 속에서 가지는 위상과 더불어 지원주택에 거주하는 연구참여자들의 경험을 통해, 지원주택을 지역사회에서의 자립을 촉진하는 모델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지원주택은 기존의 시설과 복지 서비스 안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원칙을 가진 현장으로, 새로운 돌봄 관계를 실험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관계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 먼저 입주자와 코디네이터는 기존 시설에서 보는 관리자와 통제 받는 자의 관계가 아니다. 입주자는 자기 결정권 및 자기 의지를 충분히 존중 받는다. 코디네이터는 입주자에게 입주자의 의지에 반하는 어떤 서비스를 강요할 수 없다.

— 두 번째, 코디네이터는 입주자의 지금의 필요를 해결해주는 서비스를 배정하는 역할이 아니다.입주자의 의지에 무게를 두고 입주자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고 이를 스스로 실천해 나가는데 도움을 제공한다. 입주자가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능력을 갖추는 것을 격려하고 지원한다.

— 세번째, 가능한 다양한 자원을 연계한다. 즉, 입주자가 지원주택이 속해있는 지역의 자원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새로운 이웃 관계들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새로운 관계 설정은 안정된 주거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입주자가 직접 서명하는 계약서는 거주의 권리를 분명하게 해 준다. 더불어 이 공간은 각자의 자유를 펼치는 기본적인 공간이 된다. 이와 같은 새로운 관계 속에서 입주자를 둘러싼 모든 관계는 변화한다. 계약 시 입주자는 시설을 운영하는 기관이나 시설장과 가졌던 관계와는 다른 동등한 계약 관계에 놓인다. 다양한 서비스에 대해서도 자신의 선택에 의해 누리는 주체가 된다. 자신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관계들을 적극적으로 구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더 케어 컬렉티브는 '돌봄 선언'에서 ‘돌봄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인프라로

  •  상호 지원  🪜  
  •  공공 공간  🛋  
  •  공유 자원  🌞  
  •  지역 민주주의  🪧  

까지 네 가지 조건을 소개한다. 그간 사회로부터 소외되어온 이들을 지역 내의 여러 자원과 연결하며 공동체 안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매개하는 지원주택 정책은 일종의 허브로서 이 네 가지 특성이 조성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거점이 될 수 있다.


돌봄 스펙트럼

지원주택 모델은 새로운 관계와 돌봄의 현장을 생성하면서 지원주택과 시설 사이에 선택가능한 돌봄의 스펙트럼이 존재해야 함을 시사한다. 즉, ‘돌봄 스펙트럼’은 모두가 각자의 상황에 맞는 돌봄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더 케어 컬렉티브가 ‘돌봄 선언’에서 주장한 ‘보편적 돌봄’과도 통하는 이야기다.

이는 돌봄이 삶의 모든 수준에서 우선시되고 중심에 놓이는 사회적 이상이다. (...)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 모든 돌봄이 우리의 가정에서뿐 아니라 친족에서부터 공동체, 국가, 지구 전체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우선시되는 것을 의미한다.

—더 케어 컬렉티브, 2021, p. 41

목표는 사회 전체가 돌봄의 보람과 짐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이러한 비전은 다양한 규모의 삶을 가로질러 가족으로 한정되는 돌봄의 범주를 새로이 규정해 좀 더 확장된 또는 ‘난잡한(promiscuous)’ 친족 모델을 포용하는 것으로 구현된다. 또 진정한 의미에서 함께하는 공동체적 삶의 형태를 되찾고, 자본주의 시장의 대안들을 수용하고 돌봄과 돌봄 인프라의 시장화를 거부하는 것으로, 복지국가를 회복해 생기를 불어넣고 근본적인 깊이를 더하는 것으로, 마지막으로 초국가적인 수준에서는 급진적인 세계시민주의의 유쾌함과 느슨한 국가 간 경계와 그린뉴딜을 도모하는 것으로 구현된다.

—더 케어 컬렉티브, 2021, pp.42~43


모두 다른 삶의 여정

지원주택은 현재 지원 서비스가 없다면 시설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을 위한 모델이다. 그런 점에서 고도의 집중적인 지원서비스가 고려되어야 하는 모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원주택에서는 입주 희망자의 주거 취약성과 함께 장애·질환 등을 파악한 뒤 이를 근거로 주택과 더불어 어떤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하는 가에 대한 결정이 이뤄진다. 이때 지원주택의 거주 대상자들이 가진 복합적인 취약성을 고려하여 입주자들을 이해하지만, 입주자 개개인은 모두 다른 삶의 여정 속에서 주거 불안정의 경험과 장애·질환과 관련된 경험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지원주택 내 입주자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서비스에 집중해 있다. 지원주택이 가진 예방적 역할을 생각했을 때, 입주자 자신이 미래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키우고, 입주자의 사회적 자본을 넓히는 것이 더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때 입주자 개개인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는 사람의 결여와 취약을 해결하려는 것을 넘어서, 각 개인에게 적합한 사람 중심의 돌봄(person-centered care)을 제공하고자 할 때 더욱 중요해진다.


개인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가 한 개인에 대한 ‘전인적인 이해’가 되기 위해서는, 생애 경험과 사건 속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읽어낼 때 가능해진다. 모든 사람이 지닌 복합성에 근거할 때 ‘취약성’에 대한 이해가 더욱더 분명해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원주택 당사자에 대한 생애구술적 접근은 제공되어야 할 서비스의 종류와 그 방식을 결정함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더 많은 선택지

한편 본 연구 과정에 참여한 연구참여자들 중에는 이러한 지원서비스가 항상 필요하지 않은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러운 위기가 찾아왔을 때 일시적으로 도움을 주는 서비스가 없는 경우, 안정적인 주택이 제공되었다고 하더라도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이 찾아오기도 한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대면 서비스와 활동이 중지된 후 재가 장애인과 경증 혹은 경계성 장애인들이 지원의 사각지대에 남겨졌던 사례들을 통해서도 이러한 상황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지원주택과 같은 항시적인 지원이 아니더라도 모든 이들에게 더 많은 선택지가 주어져야 한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필요한 다양한 수준의 돌봄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권리로 보장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부모가 수감되어 갑작스럽게 부모의 부재를 경험하게 될 때, 남은 자녀 중에 성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부모의 부재로 인해 발생할 돌봄의 공백과 가중을 해결할 방안이 있어야 한다. 시설의 보호 종료를 맞이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때 일정한 지원금과 어느 정도 안정적인 주거가 제공되는 것 이상으로, 생활 기술과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데 필요한 조언과 정보가 필요하다. 연구참여자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러한 선택지와 적극적인 조기개입이 가능해지면 더 이른 시기에 자신의 상황에 맞는 돌봄을 받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기초적인 장소 '집'

본 연구는 연구는 연구참여자들의 생애 전반을 살펴봄으로써 주거 불안정을 포함한 현재의 어려움만이 아니라, 과거의 여러 사건과 그로 인해 생겨난 취약성을 함께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것은 아동과 청소년 시절에 경험한 어려움과 문제가 이후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좋은 삶을 가로막는 시스템적 요인인 ‘폭력, 정상성에 갇힌 일, 배제와 고립’은 현재의 취약성이기도 하지만, 이미 아동과 청소년 시기에 시작된 경우가 상당했다.

특히 아동과 청소년 시기에 ‘집’은 성인이 되어 독립하기까지 사회적, 정서적, 경제적인 능력을 키워가는 곳이자, 자신만의 정체성을 구성해나가기 위한 기초적인 장소다. 하지만 이러한 장소를 안정적으로 제공 받지 못한 경우, 이후 한 개인의 삶에 있어서 사회적, 정서적, 경제적인 결핍과 취약성이 가중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아동·청소년 시기에 ‘안정적인 주거’의 제공은 해당 아동과 청소년의 당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성인이 되어 어떤 가능성과 역량을 갖추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것이며, 사회 내에서 어떤 기여와 역할을 해나갈 것인가 묻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 조건이다. 따라서 전생애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아동·청소년시기의 안정적 주거 지원을 예방적인 접근으로 볼 수 있다.



가정 밖 청소년

23% 노숙 경험

경향신문, 2021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아동, 청소년이 자신이 바라는 ‘주거’ 환경에서 살아갈 수 없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홈리스가 되거나 시설에 들어가는 것 뿐이다. 가정 밖 청소년 중 23%가 노숙을 경험하고 있지만 (경향신문, 2021) , 청소년 홈리스에 대해 우리 사회는 낙인을 찍고 사회적 위기 속에 있는 독립된 인격으로 보고 있지 않다. 쉼터 또한 자립에 필요한 조건과 환경을 스스로가 마련하는데 도움을 주는 데는 한계가 크다. 이로 인해 아동과 청소년들은 거리와 쉼터 그리고 다시 원가정을 계속해서 순환하고 있다.


부모가 보호할 수 없다고 판단될 경우, 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가정위탁보호 세 가지 유형을 통해 아동을 보호할 수 있다. 현재 총 15,000명 정도가 보호 받고 있으며, 매해 3,000명 정도가 만 18세가 되면 퇴소한다. 2019년 시설 위주의 보호에 대해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서는 지속적으로 가정보호 활성화를 권고했음에도 여전히 약 11,000명이 보호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일반가정위탁은 2005년에 법이 재정되었지만, 활성화되지 못하고 약 10%(9,599명 중 919명)에 그치는 상황이다. 한편 아동복지시설 내 약 70%가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학습장애, 분노조절장애, 품행장애, 언어장애 등의 증상을 보이고 있고, 갈수록 학대 피해 아동의 보호가 늘어나고 있어 전문치료와 상담과 같은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따라서 시설이 아닌 가정위탁의 확대가 중요하며, 현재 시설 보호 아동의 경우 퇴소 후 사회에 진입하는데 충분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방안이 시급하다. 가정 밖 청소년의 경우에도 집단적인 관리와 통제가 아니라 개개인의 성장을 돕고 독립을 주체적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위탁 가정 보호 기간이 끝나고 원가정으로의 복귀, 입양, 후견인 지정과 같은 선택을 하기 어려운 청(소)년의 경우, 지원주택을 제공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때 코디네이터(사례관리자)가 개인들의 교육, 취업, 건강한 관계형성, 원가정과의 재결합, 의료와 건강이 나아질 기회들을 함께 만들어나간다.

포이어(foyer)는 199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홈리스 청소년들을 위한 전환형 주거 모델로, 현재는 영국뿐만 아니라 호주와 미국으로 확장되고 있는 대표 사례이다. 포이어에서는 ‘자산 기반의 접근(asset-based approah)’을 통해 주거와 직업 훈련이 결합된 형태로 청소년들의 자립을 돕는다.

'자산 기반의 접근(asset-based approach)'이란 당사자의 결핍이 아니라, 당사자가 가진 능력(역량)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홈리스 청소년들이 번영하는 삶을 살아갈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역량'에 중점을 두고, 일정한 기간 동안 주거와 함께 다양한 지원을 제공한다.

국내에서도 포이어는 지원주택과의 연계 속에서 “홈리스 상태 청소년들이 성인으로 성장하는 전환기를 지원하는 대표적인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서종균, 2020) 또한 한부모가정의 아동을 위해 지원주택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청소년주거권
네트워크

🇰🇷 한국

청소년주거권 네트워크 노션 아카이브(새 창으로 열기) 

국내에서도 아동과 청소년의 주거권을 보장하고자 청소년주거권 네트워크가 활동 중이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는 “청소년 지원주택 공급 및 운영계획 수립의 필요성과 청소년 주거유지지원서비스 예산확보 및 관련 협력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구체적인 정책 제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위기에 처한 청소년들이 시설 외에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없다는 국내 상황을 고려했을 때, 지원주택이 가정 밖 청소년과 보호 종료 아동에게 제공될 경우 예방적인 접근으로서 높은 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기대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주거 실험이 시도됨으로써 다양한 욕구, 배경, 환경 및 상이한 성장속도 속에 있는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적합한 모델로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