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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패러다임의 전환

연립이 실현되는 보편적 돌봄

커뮤니티 케어

Community Care
우리나라의 복지제도는 최근에 들어서야 표면적인 문제의 일시적 해결에 주목하는 ‘치료적 관점’에서, 미리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예방적 접근’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제안된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가 지역사회 중심의 돌봄 시스템으로서 대표적인 예방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커뮤니티 케어를 “지역사회의 힘으로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돌봄 시스템”으로 정의하면서도 ‘고령화’에만 주목해 노인 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탈시설을 준비하고 있는 다양한 이들과 재가 장애인들은 소외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한계는 커뮤니티 케어 정책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복지 시스템 전반에 나타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수동적인 존재이자 서비스 수용자로 인식하는 방식이나, 현재 필요를 일시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을 통해 서비스의 굴레 속에서 생존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방식은 우리 사회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역량접근법

무엇이 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떤 대안적인 접근이 필요한가? 사회활동가 힐러리 코텀은 돌봄과 복지제도의 근본적 전환을 제안하는 책 ‘래디컬 헬프’에서 ‘좋은 삶’이라는 비전에 기반을 둔 역량 접근법을 소개한다. 역량접근법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수동적인 존재로 보지 않으며 그들의 관점에서 각자가 “무엇이 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발견하게 한다.

그 중 크게 네 가지 측면의 역량을 강조한다.

  •  각각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성장하게 하는  📖 학습  
  •  삶을 번성하게 하는 내적∙신체적 활력으로서의  💦 건강  
  •  지속가능한 삶을 함께 만들어나가고자 상호 협력할  🏘️ 공동체  
  •  서로 비슷하고 다른 사람들이 긴밀하게 도울 수 있는 🤝 관계  


힐러리 코텀은 이 중 ‘관계’가 최우선임을 강조한다.

“관계를 쌓아가다 보면 역량도 점점 더 발전하게 된다. 관계는 우리가 배우도록 지지하고, 건강과 활기찬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도록 돕는다. 다른 사람들과의 강한 유대감이 없다면, 또는 건강하지 못한 관계 속에서라면, 누구도 성취감을 느끼거나 제 기능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힐러리 코텀, 2020, p. 267


우리의 복지시스템 안에서도 이 점이 주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자립하기 위해서는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한 적정수준의 독립된 주거환경은 출발점에 불과하다. 개개인의 역량에 초점을 맞춘 지원서비스를 통해 각자가 추구하는 좋은 삶, 번성하는 삶을 이룰 관계를 형성해 나가도록 돕는 것이 제도의 핵심이어야 한다.


본 연구는 좋은 삶, 개개인의 꽃 피우는 삶은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지역 사회에서 함께 자립해서 살아가는 삶을 기본으로 보고 있다. 함께 자립, 즉 연립하는 삶은 ‘돌봄'이 사회의 집합적인 역량으로서 발휘될 때 가능해진다. 즉, ‘돌봄’이 개개인들이 사회적으로 맺는 관계에서 중심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돌봄을 위한 질문

언제나 돌봄은 사적이고 부수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렇기에 돌봄은 기존의 가족, 친척, 지역 공동체 내에서 여성의 역할이자 의무로 여겨졌으며, 자원과 권력을 쥔 기관이 취약계층에게 시혜적으로 제공하는 것이고, 심지어는 가족, 친척, 지역 공동체 등에서 사적으로 구성되었던 관계들이 붕괴하며 생긴 돌봄 공백을 채우기 위해 자본을 통해 구매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구매가능한 돌봄은 소비되는 돌봄을 제공하는 노동자에게는 불안정하고 취약한 일터가 되었다. 이런 ‘돌봄' 속에서 신뢰에 기반한 관계가 형성되고, 돌보는 자와 돌봄을 받는 자가 함께 역량을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돌봄’의 개념은 새롭게 전환되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돌봄’은 어떤 의미여야 할까?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모두가 서로의 번영을 지지하고 보살피는 사회는 어떻게 가능한가?
—모두가 서로를 돌보는 사회는 어떤 모습이며, 지금 이 사회는 어떻게 그 사회로 갈 수 있을까?


급진적 도움

시민적 돌봄

보편적 돌봄

이제 ‘돌봄'을 공적이며, 우리 삶과 사회에 핵심적인 것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러한 전환 속에서 돌봄은 ‘급진적 도움(래디컬 헬프)’, ‘시민적 돌봄’, ‘보편적 돌봄’이 된다.

“모두를 돌보는 것은 모든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보장한다. 이것이 래디컬 헬프, 근본부터 다른, 완전히 새로운 돌봄 방식이다. 이 시스템에서는 모든 사람의 역량이 성장하고 우리 모두가 서로를 돌본다.”

—힐러리 코텀, 2020, p. 274


‘래디컬 헬프’가 말하는 ‘급진적 도움’은 공유 문화를 창조하고, 좋은 실천이 지속될 수 있는 작업환경을 만듦으로써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까지도 돌보는 것이다. 누구나 내어줄 것이 있고 기여할 것이 있기 때문에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경계가 흐려진다. 이는 상호의존성을 인식하고 포용할 때 가능해진다. 이는 다른 말로 ‘시민적 돌봄’이다. ‘시민적 돌봄’이란 “다치고 아프고 늙고 언젠가는 죽어가는 취약한 존재로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참여하고 연루되어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바로 돌봄관계”이므로 “관계의 구체성과 시간의 지속성을 통해서만 가능한 신뢰와 우정, 고유성에 대한 것들”을 포함하는 인간관계의 양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취약함을 극복할 수 있어서 시민인 것이 아니라, 반대로 취약함을 공유하기에 시민이다. 취약함이 기본이 되는 ‘다른 사회’를 구상한다는 것은, 그 사회의 일원인 우리 모두의 경험과 관계가, 그리고 돌봄에 대한 사회 전반의 상식이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김영옥 외, 2020, p. 64


Local Area Coordination

🇦🇺 호주
로컬 에어리어 코디네이션(Local Area Coordination, 이하 LAC)은 누구나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며 ‘좋은 삶’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을 지역사회로부터 충분히 제공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혁신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LAC의 시작은 지적장애를 가진 개인들이 복지 서비스에 접근하기 위해 가족과 지역사회를 떠나야 했던 1988년 서호주의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당사자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 받기 위해 삶의 중요한 부분들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LAC는 개인, 가족, 지역사회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역량에 주목하며, 그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관계를 비롯한 지역사회 내 다양한 자원을 활용해 제공했다.


이러한 LAC의 접근법은 로컬 코디네이터를 통해 실현되는데, 그들의 역할은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들은 오랜 시간을 통해 형성된 신뢰 관계를 기반으로 정보 제공, 자원 연계 등을 통해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고 예방한다. 이처럼 로컬 코디네이터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며 지역사회 내 다양한 자원을 연계해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LAC는 당사자가 가진 결핍 또는 문제에 집중하지 않고, 개인이 추구하는 좋은 삶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문제의 해결을 넘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공공서비스에 의존할 수 밖에 없던 기존의 시스템을 관계 기반의 지역사회 돌봄 시스템으로 전환한 LAC는 개혁적인 복지 모델로서 호주를 넘어 전세계에서 실험되고 있다.


Shared Live Plus

🇬🇧 영국
영국의 쉐어드 라이브즈 플러스(Shared Live Plus)는 다양한 장애, 질환 및 고령으로 인해 독립생활이 어려운 이들, 학대나 트라우마를 겪은 후 삶을 회복하는 데 지원이 필요한 이들이 케어러(Carer)들과 함께 삶을 공유하도록 하는 모델이다.

지역사회 공동체와 연결된 공동생활을 통해 개인들이 외로움을 극복하고 고립에서 벗어나거나 병원 치료나 정신질환을 경험한 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한다. 영국은 대규모 시설을 폐쇄하고 지역사회 기반의 돌봄 지원으로 방향이 전환되었으나 지역사회 안에서 적절한 관계망에 속하지 못하고 고립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쉐어드 라이브즈 플러스는 호주의 LAC(Local Area Coordination)의 모델로부터 영감을 받았기에 마찬가지로 모두가 ‘좋은 삶’을 추구하는 것을 주요한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지원이 필요한 개개인의 상황에 맞는 다양한 방식의 도움이 관계 안에서 전해질 수 있도록 적합한 케어러를 매칭한다. 이때 양쪽의 선호가 맞닿을 수 있도록 매칭 과정을 섬세하게 설계한다. 이렇게 맺은 건강하고 신뢰 높은 관계는 돌봄을 받은 이들이 회복 후에도 지속되면서 사적인 관계망으로 확장되도록 한다. 즉, 일상과 삶을 공유하는 ‘친구'가 되어가는 것이다. 나아가 케어러의 ‘집’을 함께 공유하는 ‘홈쉐어(Home Share)’ 네트워크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Tyze

🇨🇦 캐나다
타이즈(Tyze)는 캐나다의 전인적 돌봄(케어링) 프로그램으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여 서로 돌보고 안전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이다. 이때 네트워크화된 돌봄(케어) 모델 개념과 보안 클라우드 컴퓨팅을 활용한다.

타이즈는 가족 구성원에게 돌봄이 필요할 때 온전히 가족이 책임을 지는 상황을 탈피한다. 대신 이웃, 가정 방문 간호사, 친구 등 네트워크로 연결된 지역사회 자원이 함께 돌봄을 공유하면서 관계를 구축해 나가도록 한다. 예를 들어, 자녀가 부모를 온전히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일 경우, 지역 병원 담당 의사가 노인의 진료를 관리하고, 가정 방문 간호사가 목욕을 돕고, 이웃 주민은 매일 산책을 같이 하며, 다른 지역사회 친구는 한 주에 한 번씩 장을 보고 밥을 같이 먹는 등 한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돌봄의 역할을 나누어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부모가 생을 마칠 때까지 사회 구성원으로서 건강히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


타이즈의 네트워크 돌봄 모델의 핵심은 가족 구성원, 애인, 친구 또는 이웃을 돌보기 위해 투자하는 사람들의 사적인 네트워크라는 점이다. 이에 상호연결, 정보 공유, 책임, 관찰, 동기부여와 같은 가치가 네트워크 돌봄 모델의 핵심이 된다. 또한 네트워크의 확장 및 나와 가치가 잘 맞는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을 위해 개별적이고, 안전하면서, 서로 연결되어 일할 수 있는 구조의 앱 기반으로 시스템이 작동하며, 누구나 손쉽게 작동 가능하도록 사용 편리한 디자인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