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효원 님의 이야기
더불어 자립 더불어 꿈
좋은 삶 | 꿈
지하철을 타고 매일 출근하는 평범한 일상. 꼭 뭔가를 하지 않아도, 이런 평범한 일상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어요
- 한계가 아닌 가능성을 바라봐주는 동료들 👥
- 내 취향을 담을 수 있는 혼자 사는 집 🏠
-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하는 일상 🌈
- 내가 잘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
-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제 3의 어른 🧭
- 자립생활에 필요한 라이프 스킬 강화 🙋
- 잠재력을 발휘하고 직업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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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립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어려서부터 장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이 안 계시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전부터 고민했어요. 형과 남동생 둘이 있는데요. 형제들에게 최소한 피해가 되면 안 되겠다 생각했고요.”
“저는 자립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어려서부터 장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이 안 계시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전부터 고민했어요. 형과 남동생 둘이 있는데요. 형제들에게 최소한 피해가 되면 안 되겠다 생각했고요.”
「윌 하우스」는 정효원 님이 쓴 단편소설로, 장애를 가졌어도 활동을 통해 꿈을 이뤄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독일의 장애인 공동체 ‘하우스 할’을 모티브로 한 ‘윌 하우스’는 “시설에서 나온 사람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 자립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곳”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세 명의 주인공은 각자의 역량에 맞춰 함께 일을 하는 윌 하우스에서 때로는 상처 받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타자와 관계 맺고 극복하고 끝내 성장한다.
효원 님은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죄송스러운 마음과 슬픔이 어느 순간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할머니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효원 님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중3 때까지 학교에 동행했다. 상처를 받고 힘든 시간을 보낼 때에도, 부모에게 ‘우리가 다 해줄 테니 걱정 말라’는 말을 반복해서 듣고 자존심이 상해 마음의 문이 닫혔을 때에도, 할머니는 기꺼이 품을 내어줬다. 그리고 움츠러든 어깨를 펴고 다시 세상으로 나오는 힘을 줬다.
그런 할머니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기도 했다. 무언가를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지내는 일이 습관이 됐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러다 소설 『도가니』를 읽고 감명을 받고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는데, 학교에서 우연한 계기로 참가한 해외연수 프로그램이 큰 전환점이 된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교류하며 시간을 보낸 것이다. 자기 생각을 말하고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했다.
자신감을 얻은 효원 님은 꿈꿔왔던 유럽 배낭여행을 가기로 결심한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여행 경비를 마련할 계획을 세웠다. 장애를 이유로 수차례 거절을 경험했으나 결국 목표한 금액을 모아 꿈에 그리던 일을 현실로 이뤄낸다. 바다 건너에서, 두 다리 없이도 서핑을 하는 사람도 보고 휠체어에 탄 채로 그네를 타는 사람도 본다. 효원 님은 혼자 살아갈 힘을 길러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배낭여행은 성취감을 가져다줬다. ‘나도 뭔가를 이룰 수 있구나’ 하는 확신이 마음속에서 촛불처럼 타올랐다.
이후 몇 번의 회사 생활을 거치며 일의 기쁨과 슬픔을 경험했고, 현재는 질병이나 장애가 있어도 나이가 들어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지역사회를 만들어가는 ‘나우사회혁신랩’에서 근무 중이다.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도맡으며 상사와 동료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느끼고 있다. 이곳에서 함께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자립에 대한 생각이 더 확장되었다. 이제 효원 님은 누구나 자립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소설 속에 지었던 ‘윌 하우스’를 이 세상으로 가져오겠다는 목표를 곰곰이 되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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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러운 시절을 보내다
정효원 님은 1994년 광명에서 태어났다. 출생 당시 손가락과 양쪽 엄지 발가락을 제외한 모든 발가락이 붙어 있었다. 효원 님의 장애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가장 먼저 안 사람은 아버지였다. 할머니는 그 소식을 전해 듣고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는 그 사실을 한동안 몰랐다. 당시는 효원 님의 표현대로 “소란스러운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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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이 채 되기 전, 효원 님은 붙어 있는 손가락과 발가락을 분리하는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아야 했다. 성장하면서 열려야 하는 두개골이 닫혀 있어 위독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효원 님과 가족들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부모님에게 효원 님을 시설로 보내라고 권했다. 효원 님의 장애를 자신의 탓으로 여긴 어머니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화가 났다. 자신이 낳은 아들을 시설로 보내라는 그들이 ‘원수’로 보였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효원 님을 돌보며 남다른 애정을 쏟아부었다. 그 사이 형과 동생은 효원 님을 위해 많은 것들을 양보했다. 어린 효원 님은 형과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곤 했다. 자신을 위한 가족의 헌신과 노력이 고마웠지만 가끔은 그것이 부담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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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해낼 생각을 하지 못하다
학창 시절 효원 님의 곁에는 늘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학교에 동행하며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을 도와줬다. 사춘기에 접어들자, 친구들을 나무라기도 하고 남자 화장실에 불쑥 들어오기도 하는 할머니가 창피했다. 한번은 할머니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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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체육복을 갈아입혀주려고 남자 화장실에 많이 들어오셨어요. 사춘기다 보니까 아이들이 싫어했고. 제가 그때 좀 더 잘할걸. 스스로 하면 될 일을 적반하장으로 소리를 질러버렸어요. 이제 오시지 말라고. 창피하다고.”
효원 님은 할머니에게 의존했다.
“다 해주셨기 때문에 제가 스스로 안 했어요. 교복도 입을 줄 몰랐고, 양말도 신을 줄 몰랐고, 안 했죠.”
무언가를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효원 님이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기도 했지만, 그런 친구들에 고마워할 뿐 더 깊은 관계를 맺지 못했다. 사실 친구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몰랐다. 그건 마치 체육복을 혼자 입는 일처럼 경험해본 적 없는 일이었고 시도해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쉽게 상처를 받았고, 그것을 치유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 경험이 없다 보니 모두 더디고 어려웠다. 그렇게 혼자 지내는 일이 어느새 ‘습관’처럼 자연스러워졌다. 친구들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았고, 교실 대신 도서관에 가 책을 읽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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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맺는 삶을
경험하다
고등학생 때 『도가니』를 읽고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게 된 효원 님은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생활은 고등학교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다. 그러던 중 조교의 추천으로 비장애인 학생들과 함께하는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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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지내는 것이 습관이 된 효원 님에게는 낯선 경험이었다.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했다.
“같이 연수를 가다 보니까 사람들이랑 같이 살아가는 건 이런 거구나 많이 배운 것 같아요.”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효원 님은 스스로 해내는 경험도 했다.
“영어도 잘 못하지만 인터넷도 뒤져보고, 처음으로 제가 주도적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해외연수 프로그램은 큰 전환점이 되었다. 자신감을 갖게 된 효원 님은 돈을 모아 꿈꿔왔던 유럽 배낭여행을 가기로 결심했다. 돈을 모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했지만 쉽지 않았다. 장애를 이유로 수차례 거절을 경험해야 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결국 목표한 금액을 모았고, 배낭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꿈에 그리던 일들을 하나씩 현실로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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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서는 힘을
기르리라 결심하다
부모로부터 ‘우리가 다 해줄거니까 걱정 마’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효원님에겐 가족에게 의지해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효원 님이 혼자 살아갈 힘을 길러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배낭여행을 통해서였다. 배낭여행은 성취감을 가져다줬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처음으로 ‘나도 뭔가를 이룰 수 있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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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스로 걸을 수 있는 힘을 길러야겠다고 그때 생각을 되게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자립의 의지를 다지며 효원 님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과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모님과 할머니의 도움을 받으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 그것들을 이젠 직접 경험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효원 님은 자기만의 보폭으로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을 시도했다.
경험의 기회가 절실했지만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헬스장에서도, 택배 회사에서도, 검도장에서도 사람들은 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손으로는 어려울 것이라고, 힘들 것이라고, 위험할 것이라고 했다. 도전이 실패로 끝나더라도 그 경험을 통해 다시 일어설 방법을 알고 싶을 뿐이었다. 새로운 세상에 문을 두드릴 때 세상은 효원 님을 번번이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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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퇴사
대학을 졸업한 후 효원 님은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에서 일을 시작했다. 코디네이터로서 체험홈에서 자립을 준비하는 중증장애인들을 지원하는 일이었다. 효원 님은 이 일에 만족했다. 잘할 수 있는 일이었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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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일하는 대표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좋은 직장이었지만 오래 일할 수는 없었다. 부모님은 보다 안정적인 일자리, ‘회사에서 컴퓨를 하고 사람들이랑 얘기를 하는 그런 직장’을 구하길 원했다. 그렇게 효원 님은 부모님의 뜻을 따라 다른 일자리를 찾았다.
두 번째 직장은 교육 컨설팅을 하는 회사였다. 여러 기업의 채용 현황을 엑셀로 정리하고 신입사원 교육 교재를 검수하는 일을 했다. 부모님의 바람처럼 번듯한 직장을 구했지만 효원 님은 관계의 어려움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때는 경험이 없어서 제가 잘 못했어요. 사람들이랑 잘 지냈으면 됐는데 스스로가 너무 닫혀 있었기 때문에 1년 동안 적응하지 못하고 나온 것 같아요.”
1년이란 시간을 버텼다. 이 회사를 나가면 자신을 받아줄 회사가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버텼지만, 혼자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매일 같이 들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효원 님은 세 번째 직장으로 다시 장애인 단체를 선택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직장 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어진 일을 잘 해내고 싶었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었지만 사람을 대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3개월의 수습 기간이 끝날 때쯤 세 번째 회사에서 퇴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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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할머니와
보낸 1년의 시간
세 번째 회사를 그만둔 후 1년간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컸다. 효원 님은 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다. 취업을 위해 노력했지만 면접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효원 님의 손을 봤다. 번번이 고배를 마시면서 마음은 더욱 힘들어졌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우리가 다 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로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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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같은 경우는 다 해줄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뒤에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하더라고요. 제가 능력이 없어 보이고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이 힘들었다. 자신이 마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음의 문을 닫고 한참 동안 부모님과 대화를 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그런 효원 님을 기다려주었지만 괜찮다고, 별 거 아니니 또 하면 된다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효원 님은 할머니와 오랜만에 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한번은 할머니 앞에서 마음 속에 쌓여 있던 것들이 터져 나왔고,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기대어 눈물을 쏟아냈다.
“너무 마음적으로 힘든데, 누군가에게 안겨서 울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할머니한테 처음으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까지는 생각을 못 했는데 (할머니의 존재가) 너무나 큰 거예요. 그때 깨달은 거예요.”
할머니는 효원 님이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으로 다시 나오는 데 힘이 되었다. 일을 그만둔 지 8개월 정도가 흐른 시점에 효원 님은 중증장애인독립연대 대표님에게 전화를 걸어 고민을 털어놓았다. 대표님은 이야기를 듣고 채용 공고가 난 회사가 있으니 지원해보라고 했다. 효원 님은 그 회사에 지원해 합격하면서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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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일하다
효원 님은 다양한 사회공동체 활동을 펼치는 ‘나우사회혁신랩’에서 일을 시작했다.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상사로부터 업무를 직접 디자인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낯선 제안이었다. 주어진 일을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밤잠을 설치곤 했던 효원 님에게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업무로 할 수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었다.
계속
상사가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한계를 먼저 보지 않고 자신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상사가 고마웠다.
“제가 도움이 많이 될지 모르겠지만 도움이 되고 싶죠. 왜냐하면 그분이 저를 믿고 일할 수 있게 해주었고, 다시 제가 앞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분이니까요.”
상사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지지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나우사회혁신랩에서 효원 님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고, 함께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
8
지나온 삶을
돌아보다
“그때는 제가 경험이 많이 없다 보니까 생각이 좁을 수밖에 없었어요. 일단 다 익숙하지가 않잖아요. 상처 받는 것도 익숙하지 않고. 상처 받으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해소를 못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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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원 님은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그땐 미처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많았다. 친구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나 새로운 직장에 적응해나가는 일이 그러했다. 경험이 없어 그랬지만 효원 님은 자신이 “그 일을 더 잘 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그리고 잘 해내고픈 마음은 홀로 설 힘을 기르고 있는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자립을 위한) 환경을 갖추려면 여력이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지금 하는 일을 열심히 해야 되고.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살 길을 찾는 것 같아요.”
자립은 효원 님에게 ‘삶’이다. 자립을 준비해나가는 과정은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효원 님에게 자립은 곧 삶이기에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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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자립
“이게 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부모님이 어떠한 질환에 걸렸을 때 적어도 혼자 사시게 하지는 않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할머니를 보면서 많이 느낀 게 그거거든요. 할머니가 같이 사셨어요. 괜찮으시다가 최근에 치매가 있으셨거든요. 그걸 보면서 어떠한 상황이 있더라도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부모님은 같이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더라고요.”
계속
효원 님의 자립은 홀로 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효원 님이 생각하는 자립은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 스스로의 힘으로 먼저 서는 것이기도 하다. 효원 님은 자신을 돌봐준 부모님이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도움을 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힘으로 먼저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립에 대한 생각은 나우사회혁신랩을 만나면서 더 확장되었다. 이제 효원 님은 자립이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가 있어도 나이가 들어도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곳에서 일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 것처럼 장애가 있어도 함께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플랫폼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걸 만들어보고 싶어요. 지금 열심히 일을 하고요.”
효원 님은 누구나 자립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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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일상이
이어지는, 좋은 삶
“매일매일 출근하면 좋겠어요. 매일매일 제가 사회에서 일을 해나가면서 소득이 있으면 저도 무언가를 할 수 있잖아요. 무언가를 살 수 있고 무언가를 먹을 수 있고 무언가를 이룰 수 있잖아요.”
계속
효원 님에게는 지금의 일상이 소중하다. 효원 님이 생각하는 좋은 삶도 그런 일상이 이어지는 삶이다.
“이런 일상이 계속되면 하는 바람이죠. (...) 지하철을 타고 평범한 일상. 꼭, 꼭 뭔가를 하지 않아도 이런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누군가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 너무나 익숙해 그 의미를 쉽게 잊게 되는 일상이 효원 님에게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아마도 그건 지금의 일상이 결코 쉽게 얻어낸 것이 아니기 때문일 테다.
효원 님은 지금의 일상이 이어지길 바라며 동시에 자립이라는 도전과 마주하고 있다. 어렵게 이룬 일상을 뒤흔들 수 있는 자립이라는 도전 앞에서 고뇌하기도 하지만, 그 길을 피하지 않는다. 자립은 삶을 위한 유일한 길이기에 한 걸음씩 그것을 향해 나아간다. 효원 님의 소중한 일상이 자립을 이룬 삶의 예고편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