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좋을 날을 꿈꾸기 위해
그냥 아프지 않고 그런 게 좋은 삶인 것 같아요. 아프지 않고 좀 가벼운 마음으로 생활할수 있는 것.
계속
얼마 뒤 서울로 다시 거처를 옮겼다. 누나와 함께 중랑교 아래 오두막집을 마련해 어렵게 생활했다. 생계를 위해 13살 때 신문 배달을 했다.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을 팔기도 했다. 그땐 그 일들이 힘든 줄 몰랐다. 17살이 된 제의 님은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또래들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늦었지만 학교에 다시 가고 싶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교육 과정을 속성으로 가르치는 고등국민학교를 다녔다. 그렇게 검정고시를 치르고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동급생보다 두 살 더 많았지만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냈다. 상대에 입학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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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반, 이른 나이였지만 시장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업은 잘됐다. 29살이 되던 해 거래처 직원이던 전 아내와 연애 결혼을 했다. 아내와 함께 피복 사업을 해나갔다. 사업이 번창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매일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 일했고, 한 달에 하루나 이틀밖에 쉴 수 없었다.
“한 달에 하루나 이틀이나... (밖에 쉬지 못했다.) 새벽 장사니까. 새벽에 4시부터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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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는 일이 삶의 전부였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고된 하루가 반복됐지만 날로 번창하는 사업을 바라보며 내일을 견딜 힘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것을 이룬 만큼 많은 것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30대는 여전히 인생에서 가장 기억하고 싶은 시간으로 남아 있다.
“그냥 장사 일만 신경 썼지, 다른 것에는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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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을 갚기 위해 집을 처분해 당장 네 가족이 살 곳이 없었다. 어렵게 구한 집은 네 가족이 살기 어려운,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다. 당장 생계를 잇기 위해 일을 구해야 하는 것도 문제였다. 평생 피복 공장에서 일해온 이제의 님이었다. 피복 일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는 수 없이 일용직 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3년 반 동안 두 차례 이사했다. 보증금을 낼 돈이 모자라 월세를 높이는 조건으로 집을 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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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살던) 집은 첫째, 깨끗하지 않았어요. 너무 옛날 집이어서 바퀴벌레가 많이 나와가지고.”
“(지원주택은) 깨끗하고 그러니까.”
지원주택으로 이사를 올 때 딸의 도움을 받았다. 딸은 떨어져 살지만 이제의 님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딸이 보증금을 대신 내주고 세간도 장만해줬다. 그런 딸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이제의 님은 지원주택에서 보내는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
“네, 만족해요. 모든 부분이 이 정도는 뭐, 살만하다. 뭐 아주는 아니지만 살만한 데예요.”
하지만 경제적인 고민이 남아있다. 최근까지 나이를 속여가면서 일용직 노동을 했지만, 건강이 나빠져 더는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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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내 집이 없으니까 굉장히, 집 갖는 게 소원이라 그럴까? 요즘 임대 아파트 같은 거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 정보를 모르니까...”
“우선 내 집이니까 마음이 편한 게 최고지.”
이제의 님은 가능하다면 임대 주택을 구하고 싶다. 하지만 관련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주민 센터를 통해 차근차근 알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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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마음, 지금도 뭐 아프지.”
그 아픔은 지금도 유효해서 길을 걷다가 과거에 거래했던 회사를 보면 추억에 빠져들기도 한다. 삶의 전부였던 일을 더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좋은 삶을 꿈꿔본다.
“좋은 삶, 뭐라 그래야 되나? 아프지 않고 그런 게 좋은 삶인 것 같아요. 아프지 않고 좀 가벼운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는 것.”